매일신문

[영화 신작 리뷰] 퍼블릭 에너미

부자들만 턴 전설적 은행강도…그를 되살려낸 이유는?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rmies)는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다. 상영시간 140분 동안 미국의 전설적인 갱스터 존 딜린저의 불꽃같은 삶을 담아내고 있다. 한 사나이의 일생을 다루었다기에는 너무나 짧은 기간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 숨지기 전 일년이 채 못되는 기간이 영화에 담겨 있다. 31세의 나이에 거리에서 수사국 요원의 총에 맞아 숨진 존 딜린저. '공공의 적'이라고 규정됐지만 서민들은 '공공의 친구'로 받아들였던 은행털이범. 명감독 마이클 만은 그의 일생을 윤색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담담하게 표현했다.

◇은행 터는데 필요한 시간은 1분40초

제작비 1억달러가 투입된 '퍼블릭 에너미'는 미국에서 '공공의 적 시대'로 알려진 1931년부터 1935년을 주무대로 삼고 있다. 대공황 전후, 알 카포네와 같은 조직 범죄자가 악명을 떨치기도 했지만 정처없이 떠돌며 살인과 납치, 은행강도를 저지르던 갱들도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다. FBI의 전신인 수사국(Bureau of Investigagion)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갱들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한 시기이기도 하다. 영화는 '공공의 적 1호'로 지목된 존 딜린저(1903~34)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경찰관 여러 명을 살해했고, 은행 20여곳을 털었으며, 두 차례나 탈옥에 성공한 인물. 게다가 자본가들의 치부처인 은행만 털고, 서민들의 호주머니 돈에는 관심이 없던 인물. 더욱 놀라운 점은 존 딜린저의 화려한 범죄 경력이 1933년 9월부터 1934년 7월까지 10개월 만에 모두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영화에서는 '50달러를 훔쳤다가 9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고 주인공이 말한다. 실제로 존 딜린저는 120달러를 훔친 죄로 8년 반 동안 수감돼 있다가 1933년 5월 가석방됐다. 은행 강도로 나선 그는 다시 체포됐다가 일당의 도움으로 탈옥에 성공한다. 영화는 바로 이 부분부터 시작한다. 은행을 터는데 필요한 시간은 '1분 40초'. '느려터지고 멍청한 경찰'을 농락하듯이 존 딜린저는 미국 중서부 지방의 은행을 잇따라 털어 수십만달러를 챙겼다. 그러던 중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다시 붙잡히고, 가짜 총으로 간수를 속여 두번째 탈옥에 성공한다. 하지만 수사국의 냉철한 요원 멜빈 퍼비스가 그를 쫓으며 동료들이 하나씩 죽어간다. 1934년 7월 22일 시카고 바이오그래프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던 중 수사국 요원이 쏜 총에 맞아 31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카리스마 넘치는 조니 뎁의 열연

영화에서 존 딜린저 역을 맡은 조니 뎁은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펼쳐 보였다. 그를 잡기 위해 나선 수사국 시카고 지부장 멜빈 퍼비스 역을 맡은 크리스천 베일과의 연기 대결도 볼 만하다. 미국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조니 뎁의 연기에 대해 찬반이 조금 나뉘는 분위기. 하지만 '가위손'을 통해 국내 팬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캐러비안 해적' 시리즈의 잭 스패로우를 통해 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조니 뎁의 연기는 존 딜린저라는 실제 인물을 영화 속으로 옮겨놓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의 연인 빌리 프리셰 역은 '라비앙 로즈'와 '나인'에 출연했던 프랑스 배우 마리온 코티아르가 맡았다. 사교 클럽에서 처음 만난 빌리와 존. 인디언 혼혈임을 부끄럽게 여기는 빌리에게 존은 까무잡잡한 피부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은행 강도라는 사실을 밝히고, "왜 그런 것을 이야기하느냐?"는 빌리의 물음에 존은 "속이기 싫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빌리는 클럽에서 코트를 받아주는 일을 하는 아가씨. 존은 그녀에게 "다시는 남의 코트를 받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고, 빌리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따라 나선다. 싸구려 드레스를 입고 있는 빌리에게 고급 식당에 앉은 사람들은 눈총을 보낸다. 존은 그녀에게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느냐를 따지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느냐"라고 말한다.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빌리에게 존은 "세살 때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에게 매일 얻어터지며 자랐으며, 좋아하는 것은 야구와 좋은 옷, 비싼 차"라고 말한다. 둘의 대화는 단절적이지만 모든 것을 압축하고 있다. 둘의 사랑은 필연적임을 암시한다. 사실 영화에서 존이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 부분 뿐이다. 관객들은 거칠고 반항적인 은행 강도가 될 수밖에 없던 존의 처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공공의 적 vs 공공의 영웅

영화는 막바지로 치닫는다. 존 딜린저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이 마지막에 자신이 좋아했던 영화 배우 클라크 게이블이 주연을 맡은 영화 '맨해튼 멜로드라마'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간다. 1934년작 갱스터 영화인 '맨해튼 멜로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 속에도 나온다. 주인공 블래키(클라크 게이블)가 사형대로 향하며 주지사인 동생에게 마치 외출을 가는 것처럼 쓸쓸한 듯 농담처럼 말을 건넨다. 형을 줄여주겠다는 주지사 동생에게 그는 "괜찮으니 어서 사형장으로 가자"고 재촉한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존 딜린저의 표정은 미묘한 변화를 보인다. 사실 영화 '맨해튼 멜로드라마'는 오히려 당시의 전설적인 은행 강도 존 딜린저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는 지적도 많다. 감독인 마이클 만 역시 그렇게 믿었던 모양이다. 영화 막바지에서 적잖은 시간을 이 부분에 할애했다. '존 딜린저가 공공의 적이었나, 공공의 영웅이었나'라는 물음에 감독은 "둘 다였다. 사회적 도적이자 무법자 영웅이었다"고 답했다. 실제로 존 딜린저가 영화같은 최후를 맞던 순간, 주변 사람들은 그가 흘린 피를 손수건과 치마에 적셨다고 한다. 대중의 우상이던 그의 피를 기념품으로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몇 발의 총을 맞고 존이 죽어가는 그 순간, 그를 쏜 요원이 마지막 말을 남기는 존의 입에 귀를 갖다댄다. 장면은 바뀌고, 그 요원은 감옥에 있던 존의 연인 빌리를 찾아간다. 그리고 존이 남긴 마지막 말을 전한다. "안녕, 안녕 검은 새." 까무잡잡한 피부의 빌리를 일컫는 말이고, 존과 빌리의 만남에서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 곡의 가사이기도 하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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