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내 프랑스어가 채 무르익기도 전인 1991년, 어릴 적부터 영화광이었던 내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프랑스 영화 한편을 만났었다. 2003년 우리나라의 부천 국제판타스틱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프랑스의 알랭 코르노 감독이 만든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tous les matins du monde)이 바로 그 작품이다.
연주가로서의 길보다 음악역사가로서의 길로 살아가기 위해서 멀리 프랑스로 와 있던 내게 음악에 대한 열정과 음악가로서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다. 무엇보다도 아직은 고음악(Alte musik)에 대해 거의 문외한이었던 내가 고음악, 원전악기에 대해 알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해준 영화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17~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 연주가였던 생트 콜롱브(Sainte Colombe)와 그의 제자 마랭 마레(Marain Marais)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음악가로서의 삶을 그린 영화였다.
영화의 원작을 쓴 소설가 파스칼 뀌나르(Pascal Quinard)의 소설 속 어느 문장에서 따온 영화 제목 'Tous les matins du monde sont sans retour'(세상의 모든 아침은 돌아오지 않는다)은 우리에게 마치 잃어버린(무심고 지나쳐버린?) 시간들에 대한 표현할 수 없는 회한을 짧고 깊게 전해주는 듯하다.
영화 속에서 생트 콜롱브와 마랭 마레가 서로의 음악을 위해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도구였던 비올라 다 감바가 또한 그렇다. 이제는 가끔 조르디 사발의 'Hesperion XX'이나 'Les nations' 합주단같은 고음악 전문 합주단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악기가 되어버린 비올라 다 감바. 그것이 '바로크 시대의 첼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음색과 기교를 자랑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지금 그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지금의 바이올린족 악기와 비교해 볼 때 비올라 다 감바는 줄이 2개 더 많은 6개였고 기타처럼 지판위에 프랫(fret)이 붙어있다는 사실은 아마도 이 악기가 그 당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즐겨 연주했었던가를 쉽게 말해준다.
비올라 다 감바의 인기와 대중적 인지도에 대한 또 다른 확인은 18세기 중반 바로크 시대 음악의 완성자라고 말하는 요한 세바스치안 바흐의 실내악 (비올라 다 감바와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 BWV 1027-29) 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비올라 다 감바라는 악기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관심과 애착이 가장 잘 나타난 증거가 아닐까 싶다.
아직은 늦더위가 남아있을 거라고들 하지만 입추(8월 7일)도 지나고 말복(8월 13일)도 지난 이제 가을을 준비하는 음악들을 미리 꺼내 들어보는 건 어떨까.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의 OST(생트 콜롱브, 마랭 마레 뿐만 아니라 륄리와 쿠프랭의 음악까지 함께 들을 수 있어서 좋다)를 들어도 좋고,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생트 콜롱브나 마랭 마레의 독집 음반도 다양한 연주자들의 음반이 나와 있어 선택의 여유가 있다.
마랭 마레의 비올라 다 감바 곡집 'Le Labyrinth-미로(迷路)'나 조르디 사발의 'Les voix humaines(인간의 소리)'에서 첼로보다 부드러우면서도 고풍스러운 비올라 다 감바의 선율과 함께 가을을 향해 걸어가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음악칼럼니스트·대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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