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어린이 인성 키우는 '이야기 할머니'

한국국학진흥원 부설 한국인성교육연수원은 지난주 '이야기 할머니' 30명을 선발하여 1차 신규 교육을 마쳤다. 또한 앞으로도 매달 한 차례 보수 교육이 예정되어 있다. 올 연말까지 이들은 교육을 받으면서 우리 조상들이 남긴 교훈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나 우리 생활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훈훈한 인정이 담긴 미담을 발굴하고, 내년부터는 유치원 아이들에게 현장에서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아울러 이러한 유아 인성교육 활동에 필요한 이야기 소재를 발굴 편찬하여 '이야기 할머니' 뿐만 아니라 자녀를 기르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부모들이 이 교재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요즈음 우리 아이들의 인성 교육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 사회가 점차 핵가족화 되면서 부모가 있어도 일터로 나가고, 결손가정이나 소년소녀가장의 경우에는 가정 형편상 아이들만 홀로 남게 되어 부모나 조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식을 하나 둘 낳아서 왕자와 공주처럼 키우고, 조금 자라면 지식 위주의 일등 교육을 시킴으로써 인성이 결여된 아이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 이제는 일반화된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그 결과 가정과 학교·사회에서는 온갖 걱정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이들 두고 세상을 걱정하는 식자들은 개탄하고 있지만, 실상 그것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 초래한 문제인 것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지식보다 인성을 중시하여 어려서부터 인성 교육에 힘썼다. 아이가 태어나서 돌이 되면 할머니가 아이 교육을 맡았다. 이때부터 스스로 옷 입고 올바로 수저 쥐는 것도 가르쳤으며 손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옛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6, 7세가 되면 남자 아이는 할아버지로부터 이른바 '灑掃應對'(쇄소응대)를 배웠다. 물 뿌리고 청소하고 손님이 오시면 나가서 마중하는 기초적인 인성 교육을 천자문과 같은 지식 교육보다 먼저 가르쳤다. 여자 아이는 안채에 남아 바느질, 음식 장만 등 기능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교육 내용도 '爲己之學'(위기지학)이라 하여 남에게 인정받고 평가받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의 자기 인격 함양을 위한 공부에 치중했다. 먼저 철저한 修己(수기)를 한 연후에 사회에 진출하여 治人(치인)을 했다. 그래서 도덕성을 갖추고 솔선수범할 수 있었고 걱정은 내가 먼저 하고 즐거움은 남보다 나중에 누리는 先憂後樂(선우후락)의 정신을 실천, 다른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도록 했다.

임진왜란이나 한말의 시기에 목숨을 바쳐 헌신했던 의병장들은 하나 같이 이런 교육을 받은 선비형 지도자였다. 백성들은 변변한 무기도 없이 죽창이나 기껏해야 낡은 사냥총이 전부였지만 평소 존경하던 어른이 앞장을 섰기에 주저없이 따라와서 목숨까지 바쳤던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지식만을 가르칠 뿐, 인성이나 덕성을 가르치는 데는 소홀하다. 그 결과 자기만 알고 남과 공동체를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로 꽉 차 있으며 모두가 일신의 이익만을 위해 줄달음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문제지만 앞으로는 더욱 문제이다.

이래서 과연 선진국이 되겠는가? 선진국은 물질적인 생산과 소득의 향상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20세기의 저명한 독일 출신 사회철학자 에리히 프롬(Erich P. Fromm)은 "선진국은 To be(존재)를, 후진국은 To have(소유)를 중심 가치로 한다."고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욕망(소유)만 챙기려 하지 않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품성 있는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

옛날에는 어려서 조부모로부터 받은 무릎 교육이 이런 역할을 충실해 해냈다. 그런데 핵가족 추세 하에 우리 사회의 가정은 祖孫(조손)이 분리되어 있다. 부모가 일터로 나가고 난 후, 누가 이 아이들에게 선진 국민이 갖추어야 할 인성과 도덕을 심어 주겠는가?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정부와 관계 기관이 손을 잡고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에 나서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이다. 일을 맡은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해 이 사업이 우리 사회에 순조롭게 정착되어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올바로 성장하여 장차 선진 한국을 창조할 수 있게 되기를 그려본다.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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