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름없는 저녁, 아이의 방학과제를 함께 했다. 방학과제 중에 '글이 막 쓰고 싶어요' 라는 제목의 작문을 연습하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주제별로 또래 다른 아이들이 쓴 글들이 실려 있고 그 글들을 읽어보고 그 주제와 형식에 맞추어 직접 작문을 해보는 식으로 되어 있다. 아이와 함께 다른 아이들의 글을 재미있게 읽어보고 아이가 작문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똥 마려워'라는 제목의 동시도 있었고, 그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쓴 아이들의 글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 중에서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쓰신 '달걀 한개'라는 책 이야기를 담은 부분이 있었는데, 그냥 무심코 넘기기보다는 아이와 함께 좀 더 얘기를 나누어보고 싶은 그런 내용이었다. 그 책 내용이란, 급식시간에 나온 삶은 달걀을 아이들이 먹기 싫어서 함부로 하는 것에 화가 난 선생님께서 자신의 어릴 적에 달걀 한개가 얼마나 귀했는지를 이야기처럼 쓴 글이다. 이 책에서 보면 '달걀이 귀해서 할머니 아버지 밥상에만 오르는 것이고 어릴 적 선생님은 그 달걀이 먹고 싶어서 배가 아파 밥을 못 먹겠다고 꾀병을 부리면 할머니께서 달걀 반찬을 주셨는데 그때의 그 맛은 커서 아무리 맛있는 반찬을 먹어도 그때 그 맛보다 나은 것을 먹어 본 적이 없다'고 되어 있다.
아이는 달걀이 왜 귀한 것이고, 왜 할머니 아버지 밥상에만 올리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요즘 아이들에게 달걀은 귀한 음식이 아니라 흔한 음식이니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오히려 이해하는 것이 이상한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조리가 간편하고 완전식품이라는 이유로 아이들 밥상에 자주 오르니 귀하기보다 물리는 음식 중에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요즘 아이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으니 귀한 것도 없다. 원하는 것은 웬만하면 다 가질 수 있다. 필요한 것은 부모님께서 다 사주신다. 아니 필요 이상으로 사주시는 부모님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다.
그러나 요즘 우리아이들은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장난감, 학용품, 먹을 것, 심지어 옷까지 다 풍족하다. 부족함을 모른다. 귀함을 모른다.
필자 또한 그리 부족한 세대는 아니었다. 그래도 몽당연필을 볼펜대에 끼워 쓰고 학용품을 아껴 쓸 줄 아는 마음이 있었다. 위의 선생님처럼 아프다고 꾀병을 부리면 먹을 수 있었던 바나나도 있었다. 가난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아껴 써야 하고 풍요로워졌다고 아끼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물건을 아낄 줄 아는 마음이 더 나아가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을 아낄 줄 아는 마음이 자라났으면 좋겠다.
예전보다 많은 것을 가진 지금의 아이들이 가난한 시절의 아이들보다 정말 행복하기만 할까? 위의 선생님에게는 부족했지만 달걀에 대한 어린시절의 행복한 추억이 있고 필자에겐 또한 바나나에 대한 어린시절의 행복한 추억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엔 어린 시절의 어떤 추억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할까? 아이의 방학과제를 도와주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았다.
천연정(동변초교 2년 정민재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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