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이향희(58·영양군 수비면)씨는 최근 수확을 앞둔 과수원에 멧돼지가 습격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병욱(67·영양 석보면)씨도 고구마 밭 990㎡을 멧돼지가 쑥대밭으로 만들어 군에서 보상금 80만원을 받았지만 피해액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박모(47·청도군)씨도 "요즘 산간지역 농가마다 야생조수 출몰로 농작물 피해가 잇따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경북지역 농가들이 야생동물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천적이 없는 멧돼지와 고라니 등의 개체수가 증가하면서 먹잇감이 부족해지자 이들 야생동물이 논밭에 침입하면서 농작물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기 때문이다.
경상북도에 따르면 지난해 경북지역에서 발생한 유해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규모는 18억6천500만원이었다. 피해 작물은 사과가 7억7천3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벼 3억1천600만원, 채소류 9천100만원, 포도 1천300만원 등의 순이었다.
그 중 김천시가 2억5천700만원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당했고, 상주시 1억8천만원, 영주시 1억7천900만원, 영덕군 1억7천500만원, 의성군 1억6천400만원 등이었다.
농작물 피해의 주범은 멧돼지다. 멧돼지 피해액은 총 12억7천500만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는 고라니(2억6천만원), 까치(1억3천800만원), 꿩(1천700만원) 등에 의해 농작물이 피해가 많았다.
이는 야생동물들이 개발로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수확기를 앞둔 논밭 등에 침입해 작물을 초토화시키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 경북지역 지자체들도 온갖 묘책을 짜내고 있지만 허가구역 내에서만 야생동물을 잡을 수 있는 데다, 심야시간대에는 총기를 사용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농민들은 자구책으로 그물망 등을 설치하고 있지만 비용 부담이 커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영양군은 엽사 6명을 고용해 고라니를 잡을 경우 마리당 5만원의 포획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영양군은 야생동물로 인한 농민 피해를 줄이기 위해 피해보상 조례를 마련하고 보상예산을 확보해 지난해 19건 1천500만원, 올해 9건 500만원을 지급했다. 또 야생동물 피해예방시설 설치 지원 예산 7천500만원을 확보했다.
권명달 영양군 산림보호담당은 "야생동물 피해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군 수렵장을 운영해 유해조수 개체수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면서 "지난해 수렵장 운영으로 멧돼지 36마리, 고라니 196마리, 꿩 20마리 등을 포획했다"고 밝혔다.
지자체들은 매년 7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야생동물 피해구제단'을 구성해 포획에 나서고 있다. 청송군은 농작물 수확을 앞두고 이달부터 오는 10월 말까지 3개월간 야생동물 피해방지단을 운영한다.
이 기간에 한국야생동식물보호관리협회가 추천한 엽사 22명을 군내 8개 읍·면에 배치해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멧돼지와 고라니, 까치 등의 포획에 나서고 있다.
특히 청송군은 야생동물로 인한 영농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군비 1억8천만원을 들여 농가 76곳에 전기목책기와 철선울타리·조류퇴치기 등 예방시설 설치를 지원하고 있다. 구미시도 경찰과 한국야생동식물보호관리협회 대구경북지부와 공동으로 엽사 20명으로 구성된 '유해조수 포획단'을 발족했다.
경북지역 농민들은 "야생 멧돼지 등은 주로 심야 시간대에 활동을 하고 있지만 유해조수 포획단의 활동은 일몰 전까지 낮 시간대로 제한되고 있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도군청 관계자는 "국·도비 등 피해사례 농가에 대한 지원이 매년 조금씩 늘고 있지만, 좀더 획기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진규·김경돈·정창구·모현철기자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