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입니다. 고객님의 신용카드 대금이 연체되었으니 상담원을 연결하려면 9번을 눌러주세요." 다급한 마음에 버튼을 눌렀다간 낭패를 당한다. 대부분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이기 때문이다.
불특정다수에서 전화를 걸어 현금 송금을 유도하는 보이스피싱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숱한 홍보에 전 국민이 다 알 정도가 됐지만 사기수법이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면서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알고도 속는다
6일 오후 5시 40분쯤 김모(63)씨는 집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가 1천50만원을 날렸다. "금융감독원 직원인데 금융거래 정보가 노출되어 위험하다"는 한 남성의 말을 듣고 현금지급기로 뛰어가 가르쳐준 계좌로 돈을 보낸 것. 김씨는 "'아차' 싶어 통장을 확인하니 이미 돈은 빠져나간 뒤였다"고 했다.
대구지역에서 올 들어 7월까지 전화금융사기 피해건수는 501건. 피해금액만 39억6천700여만원에 이른다. 2007년 1~7월에 388건이던 피해사례는 지난해 같은 기간 648건으로 급증했다 공공기관의 예방캠페인과 경찰수사가 본격화되면서 다소 줄긴 했지만 피해 규모는 여전하다.
전국적으로는 최근 3년간 1만8천954건이 발생해 피해 금액만 1천88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나라당 유정현 의원이 최근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피해사례는 2006년 6~12월 1천488건(피해금액 106억원)이었으나 2007년 3천980건(434억원), 2008년 8천450건(877억원)으로 크게 늘었고, 올해는 7월까지 5천36건(471억원)으로 지난해의 60%에 이르고 있다.
◆진화하는 사기수법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은 2006년 6월부터다. 당시에는 세금을 환급해준다는 식으로 접근해 개인정보를 빼낸 뒤 통장에 있던 돈을 빼갔다. 하지만 지금의 수법은 다양해졌다. 시중은행이나 카드사를 사칭, 연체료 납부를 요구하는가 하면, 정부나 공공기관을 사칭하기도 한다. 국세청이나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공단, 검찰, 가족유괴 등까지 전화사기에 동원되고 있다. 또 각종 요금을 할인해주는 것처럼 속이거나 가스나 택배 등 일상생활에 관련된 것까지 활용되고 있는 실정.
세련된 말투에 실제 생활에서 빚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가장하기 때문에 전화사기인 줄 알고도 속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대구경찰청 전화금융사기수사전담팀 심인보 경위는 "전화사기의 피해사례와 유형이 많이 알려졌지만 다급하게 전화를 받다 보면 사기라는 것을 깨닫기 힘든데다, 순간적으로 상황에 대처하기 어려운 노인을 주대상으로 삼아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전화사기 일당은 중국에 콜센터를 두고 국내에는 인출책을 둬 추적이 쉽지 않다. 경찰은 "휴대전화에 식별번호 001, 002, 005, 006, 008, 00755 또는 '국제전화입니다'라는 문구가 표시되거나 관공서·금융기관 등을 사칭하면 사기전화인 만큼 응하지 않아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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