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는 요즘 떠들썩하다. 군 전체가 '삼국유사'에 흠뻑 빠져있다.
중앙고속도로 군위IC를 들어서자마자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라는 대형 홍보조형물부터 시선을 확 잡아끈다. 군청 직제에 삼국유사 담당까지 뒀고, 교육문화체육회관의 명칭도 삼국유사교육문화회관으로 바꿨다. 삼국유사 홍보는 원정도 불사였다. 대구의 시내버스나 택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를 홍보하는 광고가 심심찮게 눈에 들어온다. 군위의 삼국유사 사랑은 남달랐다.
한편으론 우리는 군위가 지나칠 정도로 삼국유사와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 스님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삼국유사가 군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 스님의 유물이 넘쳐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는 그 답을 구하러 고로면 화북리 화산 기슭에 자리한 인각사로 향했다.
인각사는 보각국사 일연이 고려 충렬왕 9년인 1283년 78세의 나이에 6년간 노모를 봉양하며 삼국유사를 비롯한 불교서적 100여권을 저술했다는 천년 고찰이다. 바로 군위가 삼국유사의 산실임을 인각사가 말하고 있다.
일행이 군위의 삼국유사와 일연 스님 사랑에 주목하는 것은 오랜 학술조사와 연구, 홍보 등을 통해 삼국유사의 가치와 일연 스님의 생애를 새롭게 재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군위는 삼국유사를 우리의 정신으로 재탄생시키는 데 열정을 쏟고 있어서다. 어쩌면 정부나 저명한 학술단체 등에서 할 일을, 지방의 작은 지방자치단체와 사찰에서 이같은 '대업'을 하나하나 이뤄가고 있으니 일행이 고개를 수없이 떨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우리는 그동안 배워온 역사 교과서를 잠시 비켜두고, 삼국유사와 일연 스님을 군위처럼 제대로 느껴볼 참으로 스님의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삼국유사는 안타깝게도 활자본만 전한다. 어디에 묻혀있는지는 모르지만 고려시대의 각본(刻本)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정확한 편찬 연대도 알 수 없다. 다만 일연 스님이 인각사에 내려온 즈음에 편찬한 것이 통설이다. 육당 최남선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 하나를 택하여야 할 경우 서슴지 않고 후자를 택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뭘 말하는 걸까? 그만큼 삼국유사에는 '절대적'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더불어 우리 고대사 서술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보배이다. 그러면서 정사인 삼국사기가 간과했던 소중한 것들을 우리에게 남겼다.
삼국유사 저술 당시 시대 상황은 암울했다. 무신정권이라는 내우(內憂)가 채 아물기도 전에 몽고의 침입이라는 외환(外患)을 겪게 된다. 고려는 원(몽고)나라의 부마(사위)국으로 격하됐고, 왕과 백성들의 핍박당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수십년 백성들이 수난을 겪는 동안 민족의 자주성을 되찾으려는 의식이 살아났고, 몽고를 상대로 한 30년 민족 대항전 속에 역사의식 또한 불타올랐다. 이러한 당시 시대 상황은 일연 스님의 손을 빌려 민족의 역작을 낳게 한 것이다.
삼국사기는 단군의 이야기를 쓰지 않았으나 삼국유사는 단군신화를 최초로, 그리고 책 첫머리에 올렸다. 고조선에 관한 서술은 우리가 반만년 역사를 가진 나라, 단군을 국조(國祖)로 받드는 근거를 제시한 기록이다.
만약 삼국유사에 고조선의 역사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삼국시대 이전의 우리 역사를 중국의 사료인 삼국지의 '동이전'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됐으리라.
고려 당시 주요 지배층은 우리나라의 시작을 중국 역사서에 기초한 기자조선에 두려했다. 일종의 사대주의이자 중국 땅을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닐까. 반면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 첫머리에 당당히 단군신화라는 우리의 역사를 기술했다. 국가의 위상을 중국과 나란히 뒀고, 단군을 천제의 아들로 설정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중국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자주적 민족사관을 펼친 것으로 확인된다.
인각사 주지 정련 스님은 "일연 스님은 우리 민족이 몽고의 침입으로 굴욕을 당하고 있는 시기에 민족자주의식을 깨우치고 후대에 민족혼을 심어주기 위해 삼국유사를 편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국유사의 또 다른 자랑은 삼국사기에 빠져 있는 작은 나라들을 놓치지 않았다. 바로 '가락국기'가 대표적이다. 삼국유사가 아니었다면 우리에게 가야는 신비와 전설의 나라로만 남지 않았을까.
삼국유사에서 우리는 시인이자 문인인 일연 스님을 만난다. 삼국유사 안에는 다양한 문학이 흐르고 있다. 불교의 깨달음을 담은 시가 있는가 하면 우리 소설의 흐름을 가늠해 보는 설화와 고대의 시가인 향가, 그리고 고대 백성들이 불렀던 민요가 실려 있다. 하나같이 주옥 같은 작품들이다. 국어교과서나 역사책에서 한번쯤은 배운 내용들이지만 결코 대충 넘어갈 수 없는 삼국유사의 절대 가치이다.
삼국유사는 우리의 신화와 원형 그대로의 옛 전설을 알게 하는 유일한 책이다. 특히 향가 14수는 균여전에 전하는 11수와 함께 국문학계에선 역사서 이상의 귀한 보물이다. 향가를 집대성한 책으로 알려진 '삼대목'이 전하지 않는 지금, 삼국유사의 문학적 가치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일연 스님이 쓴 48편의 찬시가 있다. 향가는 세상에 널리 알려졌지만 찬시는 덜하다. 찬시는 48편 전체가 7언절구로 된 정형시로, 일연 스님의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유사'는 정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거나 빠진 일들을 수록한 글을 가리킨다. 그래서 간혹 삼국유사는 문장의 짜임새가 정사와 같지 못하고, 잘못 전해져 오는 것을 그대로 수집·수록한 것도 없잖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연 스님이 집필을 위해 상당기간 관련 자료를 수집했으며, 전해오는 문헌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님이 머물렀던 절이나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를 수차례 검증한 뒤 실었다. 또한 직접 현장을 찾아 확인하는 현장성을 매우 중시했다 한다. 스님 평생의 역작임을 말하는 것이다.
삼국유사는 고조선과 삼국, 가야 등 고려 이전의 역사를 담은 것은 물론 불교 이야기도 적었고, 선행과 효도 이야기를 담은 '효선' 편으로 그 끝을 맺고 있다.
일연 스님은 당대 최고의 역사가이자 저술가, 시인인 동시에 불교학자, 효성이 지극한 아들로 폭넓게 평가받고 있다. 일연 스님은 당시 승려로서 최고의 위치인 국사에 책봉되었지만 항상 연로하신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말년에 노모를 모시고픈 마음이 간절해 당시 충렬왕에게 '고향행'을 수없이 간청했고, 결국 왕은 일연 스님의 간청을 허락했다. 일연 스님은 인각사에 몸을 의거한 뒤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일연 스님이 굳이 삼국유사에 효선편을 둔 것은 어쩌면 아홉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 곁을 떠나왔기에 19세에 일연 스님을 낳고 77년을 홀로 산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 때문이 아닐까.
군위는 지금 군청은 '삼국유사', 인각사는 '일연 스님'을 중점적으로 알리고 있다. 일행이 군위를 취재할 당시 마침 군청에서 삼국유사가온누리(중심 세상)사업 용역 보고회가 열렸다. 삼국유사와 일연 스님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삼국유사테마공원을 만들고, 삼국유사를 문화콘텐츠화하는 노력들이다. 문화콘텐츠는 영화와 드라마, 연극 및 뮤지컬, 출판물 등에 삼국유사를 담는 계획들이다. 21세기는 '문화가 경제를 먹여 살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군위는 삼국유사로 민족 정신의 중심 고장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동시에 문화콘텐츠로 군위의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삼국유사 관련 도메인을 등록했고, 국내에 출판된 500여종의 삼국유사와 일연 스님 관련 책들을 모은 삼국유사 문고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주민 교육과 출판, 각종 세미나 등도 열려 군위는 삼국유사 알리기에 '올라운드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각사는 일연 스님의 생애를 집대성하고 있다. '삼국유사 민족성지'로 새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 편찬 과정과 생애를 전시한 '보각국사 일연기념관'을 연 데 이어 이달부터 연말까지 '삼국유사 문화축전'을 열 예정이다. 27일엔 일연 스님의 정신과 사상을 기리는 추모다례제를 열고, 9월 19일에는 대구경북의 초·중·고생들을 대상으로 '삼국유사 골든벨 행사'를 기획했다.
또 9월 26일 인각사 건너편 학소대 수변무대에선 산사음악회와 뮤지컬로 구성된 '삼국유사 문화의 밤'도 연다. 12월 18일에는 삼국유사-일연 학술대회를 개최해 공모한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할 예정이다.
'우리'보다는 '나'가 판치고 있는 지금, 삼국유사와 일연 스님은 어쩌면 우리에게 진정한 '우리'를 찾아주고, 민족이라는 주체성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아니겠는가. 그 중심에 대한민국 경북의 작은 고을인 군위가 우뚝서고 있다.
이종규기자
군위·이희대기자
사진·윤정현
자문단 박수호 군위문화원장 홍상근 부림 홍씨 문중 운영위원장 홍연백 군위군 기획감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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