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한평생을 결정짓는 계기는 아주 사소한 일인 경우가 많다. 27년간 미술품을 거래하는 화랑의 주인이자 컬렉터로 활동해 온 동원화랑 손동환(56) 대표가 바로 그렇다. 29살에 화랑을 열게 된 이유를 물었더니 "우연한 계기에 손에 넣게 된 그림 한 점 때문"이라며 웃어보였다. 그다지 이름있는 작가도, 고가의 작품도 아니었다. 하지만 볼수록 끌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술 한 잔 마시고 그림을 보고, 밥 먹다가도 그림을 보면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됐다. 미술 서적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근무한 것도 미술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가 됐다. 화가들을 자주 만나고, 그들의 작업실을 들락거리면서 미술에 매료됐다. "좋은 그림을 보면 갖고 싶어지더군요. 하지만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하지 않으니까 힘들었죠. 그래서 화랑을 열게 된 겁니다. 그림을 사고 팔다가 여유가 생기면 다시 좋은 그림을 사 모았죠."
화랑 주인이라면 부지런히 그림을 사고 팔아야 한다. 하지만 손 대표는 파는 것보다는 사 모으는 쪽에 일가견이 있다. 장사 잘하는 화랑은 당시에 부자가 되고, 장사 못하는 화랑은 나중에 거부(巨富)가 된다고 했던가. 손 대표는 소장한 그림만 600점을 훨씬 넘는다. 웬만한 미술관 빰 칠 정도다. 몇해 전만 해도 연말이면 몇 점이나 있는지 헤아렸는데, 500점까지 헤아리고는 그만 두었다고 한다. 그저 닥치는 대로 모으는 게 아니다. 좋은 그림을 만날 때 가슴은 두근거리지만 눈은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진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자주 손 대표에게 연락을 한다. 그림을 구해달라는 부탁이다.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들이 수 많은 미술관 소장 작품 중에 3점만 고르라고 했더니 진환 선생의 1941년작 '혈'을 3점 중 하나로 꼽았다고 합니다. 몇 해 전 제가 구해서 국립현대미술관에 주었던 작품입니다."
소장품이 자식 같다고 말하는 손 대표에게 한 작품만 골라달라고 부탁한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사진을 찍기 위해 한 작품만 정해달라고 해도 손 대표는 "어휴, 어떻게 한 작품만 고릅니까? 전부 다 좋은데"라며 난색을 표했다. 어렵사리 정한 그림은 대구 출신 작가인 김호룡 선생의 작품. 1993년 발간된 '향토 작고 서양화가 유작전'에도 김호룡의 작품은 2점이 실려있을 뿐이다. 출생과 사망 연도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 속에 잊혀졌던 작가. 손 대표는 어렵사리 새로운 작품을 손에 넣게 됐다. 손 때 묻은 낡은 액자에 캔버스 천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작품. 제목조차 알 수 없고 제작 연도만 1934년이라고 작게 적혀있을 뿐이다. 동해의 풍경을 그린 듯하다. 손 대표의 자료집에는 작은 메모지가 붙어있다. '미술평론가 김영동 선생이 알려주기를, 1929년 11월 30일자 조선일보에서 김호룡의 대구 전시를 소개할 때 26살로 나와있다'는 내용이다. 이를 근거로 추정해보면 김호룡 선생은 1903년 생임을 알 수 있다. "김호룡 선생의 작품뿐 아니라 1930년대 당시 그림들은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금액으로 도저히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그림들입니다." 동원화랑은 2012년 개관 30주년을 준비하고 있다. 세월 속에 잊혀진 지역 출신 작가들의 주옥같은 작품들로 개관 30주년을 기념할 계획이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경선 일정 완주한 이철우 경북도지사, '국가 지도자급' 존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