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온다습 날씨에 미국흰불나방 애벌레 극성

대구 도심 곳곳 가로수 몸살

20일 오후 대구 북구 칠성로 양버즘나무 가로수가 흰불나방 애벌레(아래)가 잎을 닥치는 대로 갉아먹어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20일 오후 대구 북구 칠성로 양버즘나무 가로수가 흰불나방 애벌레(아래)가 잎을 닥치는 대로 갉아먹어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20일 오후 대구 달서구 성서산업단지 내 2차선 도로를 따라 늘어선 양버즘나무. 줄기와 잎으로 하얀 털의 애벌레들이 스멀스멀 기어다니고 있었다. 애벌레의 정체는 미국흰불나방의 유충들. 도로변에 주차된 차량 위에는 애벌레와 애벌레가 먹어치운 나뭇잎 찌꺼기가 가득했고, 거리에도 행인들이 피해다녀야 할 정도로 벌레들이 많았다. 가게 안으로 기어들어오는 벌레를 쓸어내던 노모(27)씨는 "요즘 들어 부쩍 벌레들이 많아져 치우느라 애를 먹는다. 구청에서 거의 매일 약을 뿌리지만 애벌레들의 극성은 가실 줄 모른다"고 했다.

장마가 지나고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미국흰불나방 유충들로 도심 곳곳의 가로수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각 구청에서는 양버즘나무가 식재된 구간을 중심으로 해충 방제작업에 나서고 있지만 워낙 수가 많고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역부족인 실정이다.

대구 8개 구·군청에 따르면 최근 들어 미국흰불나방 애벌레를 잡아달라는 민원이 하루 평균 10건 이상 들어오고 있다. 보기에도 혐오스러운데다 나무에서 툭툭 떨어지거나 잎을 갉아먹으면서 각종 분비물을 만들어 불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구·군청은 방제차량을 동원해 매일 약제를 뿌리고 있지만 애벌레의 확산 속도가 워낙 빨라 애를 먹고 있다. 달서구의 경우 양버즘나무가 밀집한 성서산업단지와 달구벌대로, 월배로 등을 중심으로 8천그루에 이르는 양버즘나무에 약을 살포하고 있다. 북구청은 칠성동과 팔달로 등을 중심으로 양버즘나무 5천400여그루 방제에 나섰고, 수성구는 방제차량 3대를 동원해 대구은행 본점 주변과 상동시장, 만촌동 차량등록사업소 인근 도로 등을 중심으로 작업을 벌이고 있다. 달서구청 관계자는 "도로변에 주정차된 차량을 피해 약제를 뿌리며 지나가기 때문에 작업 속도가 더딘데다 한꺼번에 여러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다 보니 방제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미국흰불나방 애벌레가 갑자기 폭증한 이유로 최근 고온다습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그동안 장마와 서늘한 날씨로 숨죽였던 나방들이 일제히 번식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흰불나방은 1년에 3차례 번식을 하는데, 올해는 잦은 비로 번식 시기가 한꺼번에 몰렸다는 것.

경북대 권용정 교수(응용생명과학부)는 "해충 구제를 위해 가로수에 감아둔 잠복소를 무작정 태우거나 매립하면 천적까지 모두 죽이게 된다"며 "틈이 넓은 모기장을 씌워 거미나 기생벌 등 천적을 살리고 특정 곤충의 호르몬에 작용하는 생리활성 저해제 등 친환경 농약을 살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미국흰불나방=한국전쟁을 전후로 미국의 군수물자에 묻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애벌레는 몸길이 3∼5㎝ 정도로 송충이를 닮았으며 잡식성으로 정원수나 가로수에 서식하며 나뭇잎을 갉아먹는다. 1년에 3차례 번식하며 한번에 500∼600개씩 알을 낳기 때문에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애벌레의 털이나 사체는 호흡기 질환이나 아토피 피부염 등을 유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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