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근서의 대중문화 읽기] 지금 우리 드라마의 리얼리티

텔레비전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은 드라마다. 물론 뉴스가 있기는 하지만, 드라마만큼 시청률이 높지 않으며, 드라마만큼 많은 편당 제작비가 투입되지도 않는다. 어떤 면에서 드라마에서의 성공과 실패 여부는 그 채널의 한 해 농사를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된다.

더구나 한류 덕택으로 거의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나라 바깥으로 수출되는 지금, 그것은 직접적인 경제적 수익과 더불어 다양한 부가 효과로 인해 더욱 중요한 콘텐츠로 대접받고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극영화와 똑같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콘텐츠 형식이다.

누가 뭐래도 드라마의 중심에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이야기만으로는 드라마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가 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드라마가 되기 힘들다. 물론 이때의 이야기란 단순히 서사의 구성이라는 좁은 의미라기보다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모든 담화의 형식들을 포함하는 넓은 뜻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드라마는 단순한 스토리가 아니라, 그야말로 '이야기하기'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이야기는 시대를 반영한다고들 말한다. 대중의 서사적 콘텐츠인 드라마는 천재 작가의 독창적 문학 작품이라기보다는 입에서 입으로 옮겨다니며 구전되는 민담이나 설화에 가까운 집단성과 사회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는 통속적이다. 드라마는 곧 당대의 통념과 풍속을 드러내는 '리얼리티'를 갖는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현되는가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는 드라마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드라마가 특성상 시대를 반영한다는 말은 '드라마는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는 말로 와전되어서는 곤란하다. 드라마에 대한 리얼함의 요구는 단지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뿐이고, 특정한 문화적 분파의 이념적 요구에 지나지 않는다.

어차피 드라마란 허구이며, 그것은 현실을 상상적으로 전취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상상의 설득력이지, 그것이 터하고 있는 '현실'은 아닐 것이다. 지금만큼 텔레비전 드라마가 풍요로웠던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장화홍련'(KBS)과 같은 그야말로 '통속적'인 아침 드라마로부터 '스타일'(SBS)이나 '탐나는 도다'(MBC)와 같은 독특한 이미지와 형식을 갖는 주말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지금은 유례없이 화려하고 풍요로운 드라마의 시대다.

호러물이나 납량물 팬이라면 '전설의 고향'(KBS)과 '혼'(MBC)을 보면 된다. 특히 '혼'의 설정과 스토리 전개는 특이하고 개성 있다. 'M'에서 시작된 MBC의 실험이 조금씩 세련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비슷한 이미지기는 하지만 '선덕여왕'(MBC)과 '천추태후'(KBS)가 역사극의 계보를 잇고 있다. 특히 '선덕여왕'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막강하다.

전형적인 KBS식 드라마인 '솔약국집 아들들'의 촌스러움과 SBS식 리얼리즘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는 '태양을 삼켜라' 또한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더구나 2년 만에 컴백한 윤은혜의 '아가씨를 부탁해'가 있다. 벌써부터 '2년 동안 뭐했냐'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기대가 크다.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적 규모의 경제 위기는 아직 속 시원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어떠한 면에서 세상은 지금 온통 회색빛으로 컴컴하고 축축하다. 이러한 와중에도 우리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다.

소재 자체가 화려한 경우, 스펙터클이 화려한 경우, 캐스팅이 화려한 경우, 스타일이 화려한 경우, 스토리 전개가 화려한 경우들과 더불어 그 구색 자체가 무엇보다 화려하다. 이러한 화려함이야 말로, 지금 우리들의 삶을 반영하는 드라마의 '리얼함'이 아닐까. 우리의 삶은 비록 회색이지만, 그럴수록 그 삶의 꿈은 화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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