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속 예술 산책] 포 미니츠/ 독일 크라우스 감독

외로운 할머니가 있다.

60년간 교도소에서 여죄수들을 상대로 피아노를 가르쳐 오고 있다. 완고한 성격에 독신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녀의 유일한 위안은 음악이다. 모차르트와 쇼팽, 슈베르트를 연인 삼아, 고독한 삶을 피아노 건반으로 어루만지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교도소 예배당에서 연주를 하던 그녀가 거울을 통해 한 소녀 죄수를 본다. 의자에 손을 올려놓고 자신을 따라 모차르트의 곡을 연주하고 있다. 비록 소리는 나지 않지만, 모차르트를 애무하며, 감미로운 그 선율에 몸을 싣고 있다.

소녀에게서 천부적인 재능을 엿본 할머니는 아주 오랜만에 떨리는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소녀는 폭력적이고, 반항적이다. 가슴을 닫고, 거칠게 행동한다. 첫날부터 교도관을 때려 눕혀 독방에 갇힐 정도다. 할머니는 소녀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교도소장을 설득해 피아노 콘테스트 참가 허락을 받고, 소녀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독일 크리스 크라우스 감독의 '포 미니츠'(2006년)이다. 상처받은 두 영혼이 피아노를 매개로 마음의 닫힌 문을 열고 소통하는 영화다.

슈만과 모차르트 등 정통 클래식만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할머니 스승과 '흑인 음악'이라는 할머니의 힐난에도 힙합과 재즈 등 모던 음악을 고수하는 여죄수 제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고집스럽게 살아온 할머니와 파격과 파행, 돌출적으로 살아온 소녀가 피아노의 선율 속에 녹아들어 두 영혼이 크로스오버되는 영화다.

시인 랭보는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고 말했다. 사이코패스라면 모를까 인간이라면 대부분 한두 개쯤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순수한 영혼일수록 더하다.

할머니(모니카 블리브트리우)와 소녀(한나 헤르츠스프룽). 둘 또한 견디기 어려운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할머니는 사랑하는 사람을 나치에게 잃었고 그날 이후 마음의 문을 닫고 살고 있다. 소녀는 아버지의 성폭행으로 엇나가기 시작해 급기야 교도소까지 오고 말았다. 외부와 담을 쌓고, 그 속에 자신을 가두고 살아왔다.

둘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이 음악이다. 피아노 건반으로 자신의 가슴속에 든 응어리를 풀어낸다. 그들에게 음악은 친구이자, 위안이고 외부와 소통하는 유일한 언어다.

그러나 소통의 과정은 힘들다. 세대를 뛰어넘는 나이 차이와 음악에 대한 관념도 판이하다. 둘은 닿을 듯 말듯 사제 관계를 형성한다. 하나가 다가서면, 하나가 물러서고, 하나가 끌어안으면 하나는 뿌리친다. 상처받고, 그 상처가 고름이 되어 깊은 흉터로 자리한 영혼이 눈 녹듯이 쉽게 열릴 수는 없는 일이다. 둘은 끝까지 대립한다.

이 영화의 포스터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수갑을 찬 채 피아노 건반에 손을 대고 있는 모습이다. 여죄수의 신분으로 영혼의 자유를 꿈꾸는 이미지를 강렬하게 표출하고 있는 장면이다.

제목 '포 미니츠'는 소녀에게 주어진 4분간의 자유라는 뜻이다.

자신의 고통을 고스란히 음악에 녹여 넣은 퍼포먼스와 즉흥 연주는 가슴을 쥐어짜게 만든다. 특히 연주를 끝내며 피아노가 내려앉으라는 듯 건반을 내리치는 장면은 자신을 옥죄는 수갑과 굴레, 아픈 기억까지 깨어버릴 듯 강렬한 느낌을 준다.

감독 크리스 크라우스는 소녀 제니역을 할 수 있는 배우를 찾아내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2년에 걸쳐 오디션을 가졌고, 마지막에는 방송을 통해 제니 역을 맡을 배우를 공개모집하기도 했다. 그는 "제니 역을 할 배우를 못 찾으면 8년간 기획을 한 이 영화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고 했다. 신인에 거친 이미지지만, 피아노에 소질이 있는 여배우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마침내 한나 헤르츠스프룽을 찾았을 때 감독은 무릎을 쳤다. 개봉이 되면서 1년간의 연습 끝에 그녀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니다. 대부분 그녀와 비슷한 외모의 전문 피아니스트가 연주했다.

특히 마지막 4분간의 연주는 기요시 사와미라는 일본 피아니스트의 퍼포먼스를 배워 연주 흉내만 냈을 뿐이다. 실제 연주는 카에 쉬라티라는 피아니스트가 했다. 두 손을 뒤로 묶고 연주하던 곡은 얀 틸만 샤데라는 피아니스트의 솜씨다.

"너에겐 관심 없어. 음악만 있으면 돼"라는 스승과 "그 음악은 내 것이에요. 그리고 그것은 곧 나예요"라며 대들던 제자가 4분간의 연주 후 스승은 객석에서 희열에 찬 손 키스를 보내고, 제자는 최대의 예우를 갖춘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특히 감동적이다.

평생 한 번도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할머니가 제자를 탈옥시켜 콘테스트에 참가시키는 희생도 눈물겹다.

클래식과 모던 재즈의 만남처럼 영혼과 영혼이 만나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루는 라스트 신이 짜릿함을 전해준다. 가을날에 보면 더욱 정취가 날 음악 휴머니즘 영화이다.

김중기 객원기자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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