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토요갤러리] 스타킹을 신는 여자

피로한 무희·사무적 매니저의 대조적 표정

# 스타킹을 신는 여자

작가: 툴루즈 로트렉 (Henri Marie Raymond de Toulouse Lautrec:1864~1901)

제작연도: 1894년

재료: 판지 위에 유채

크기: 58×46cm

소재지: 오르세미술관(프랑스 파리)

예술의 영역에서 창작 동기는 물론 관점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재현 욕구와 표현 욕구에 근거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외부 사물을 모방하고자 하는 욕구도 있지만, 반대로 내적·정신적 세계를 표출하고자 하는 충동도 가지고 있다.

또한 프로이드는 예술적 행위를 무의식에 억압된 욕구들을 해소하는, 사회적으로 승인된 방식의 하나로 보고 있다. 즉 예술가는 작품 속에 자신의 무의식 세계를 표출함으로써 억압된 욕구에 의해 발생되는 불유쾌한 내적 긴장을 해소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이래로 서구미술은 인상주의에 이르기까지, 고전주의 계열의 사조이건 자연주의 계열의 사조이건, 작가가 객관적 사실(reality)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화폭 위에 충실하게 재현하는 길을 걸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객관적 사실 이상의 그 무엇을 추구하는 표현주의 경향은 16세기 후반 매너리즘(mannerism) 시대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낭만주의에 이어 인상주의 이후에는 서구미술사에서 하나의 분명한 흐름으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흐름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인 로트렉은 남부 프랑스에 기반을 둔 귀족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뜻하지 않은 사고로 골절상을 입은 후 하반신의 성장이 멈춰버린다. 자신의 몸에 대해 절망하던 로트렉에게 있어 그림은 잠시나마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었다. 술과 여자도 그와 평생을 함께한 동반자였으나 결국 성병과 알코올중독으로 그를 죽음으로 이끈 파멸의 동반자였다.

로트렉은 인상주의와 동시대를 살았던 화가였으나 순수한 풍경 화가를 야만인에 비유할 정도로 자연을 중시하지 않았으며 모든 관심을 인물에 집중했는데, 이러한 그의 화풍은 난쟁이라는 작가의 신체적 장애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트렉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밤거리의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자들이 대부분인데, 이 작품의 모델들도 카바레 물랭 루주의 무희와 그녀를 관리하는 매니저이다. 날카로운 심리분석을 통해 인물의 내면세계를 포착해 표현하고자 하는 그의 일반적 특성은 이 작품에서도 잘 나타난다.

작가는 밤의 여자들을 스캔들이나 에로틱한 시각에서가 아니라, 또한 이들의 삶을 미화시키거나 사회적인 경종을 울리려는 어떤 시도도 없이,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과장없이 묘사한다. 이를 위해서 일체의 군더더기를 생략했다. 색채는 대상의 색깔을 알게 해주는 정도에서 그치며, 데생은 단순하면서도 역동적인, 즉 매우 표현적인 선을 사용해 모델의 핵심적인 자세나 표정을 포착해 그들의 성격과 심리 상태를 부각시킨다.

무대에 나갈 준비를 하는 무희의 피로와 짜증에 절어 있는 표정과 그녀가 준비하는 과정을 냉정하게 사무적으로 관찰하는 매니저의 얼굴이 보여 주는 대조에서 당시의 세기말적인 사회분위기뿐만 아니라 작가의 인간적인 고뇌와 사랑과 갈등을 읽을 수 있다.

권기준 대구사이버대 미술치료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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