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 시조 들여다보기] 구름이 무심ㅎ단 말이

구름이 무심ㅎ단 말이

이존오

구름이 무심ㅎ단 말이 아마도 허랑(虛浪)하다

중천(中天)에 떠 있어 임의(任意)로 다니면서

구태여 광명(光明)한 날빛을 따라가며 덮나니.

'구름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떠돌아다닌다 함은 허무맹랑해서 믿기가 어려운 말이로다/ 하늘 한 가운데 떠서 제멋대로 다니면서/ 굳이 빛나는 햇빛을 의도적으로 덮어 어둡게 하려는 그 속을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라는 의미다.

'구름' '날빛' 등의 상징적 표현으로 이미지를 형성해 충신의 고뇌를 담았다. 시조 속의 구름은 자연의 구름이 아니라 간신(奸臣)을 나타낸다. 햇빛이 밝은 대낮에 사물을 어둡게 보이게 하여, 제대로 대상에 대한 인식을 갖지 못하게 하는 '구름'의 악마성(惡魔性)을 작자는 개탄했다.

고려 공민왕 때 이존오(李存吾·1341~1371)가 읊은 시조이다. 그는 1360년 문과에 급제해 수원서기를 거쳐 사관이 되었고, 1366년 우정언이 되었다.

그때 임금의 총애를 받는 신돈(辛旽)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그는 승려였는데 공민왕의 신임을 받아 관리가 되었다. 왕은 그를 '도(道)를 얻어 욕심이 없으며, 또 미천(微賤)하여 친당(親黨)이 없으므로 큰일을 맡길 만하다'며 많은 권력을 부여했다. 신돈은 이를 기화로 갖은 횡포를 저질러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

이존오는 그의 횡포를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비난하는 상소문을 올렸으나 왕의 노여움만 샀다. 공민왕이 극형을 내리려 하자 이색(李穡) 등이 변호에 나서 장사감무로 좌천되었다. 후에 석탄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가 울분으로 병이 나서 죽었다 한다.

세상의 일이란 잘못이 영원히 숨겨지지는 않는 법. 이존오가 죽고 석 달 후에 신돈이 주살(誅殺)되자 임금은 뒤늦게 이존오의 충성심을 알게 되었고, 성균관 대사성을 추증했다.

한 나라의 통치자가 이른바 '인(人)의 장막'에 가리면 국사를 제대로 살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뻔한 일. 어느 시대나 통치자의 신뢰를 빌미로 죄를 짓는 사람들이 있었다. 요즘은 어떨까?

없다고 단정해도 좋을까. 누가 '측근'이라느니, '실세'라느니 하는 말들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있을 것 같지도 않은가. 최고 통치자만 내 주변엔 그런 사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면 참 큰일이다.

문무학(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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