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찰, 혈흔구분 시약 개발했다

'구이아악' 2년여 연구 쾌거…외국산 전량수입 대체 연 5억 효과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 임채원 검시관이 2년여에 걸쳐 연구한 끝에 자체 개발한 혈흔검사용 시약인 구아이악을 시연하고 있다.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 임채원 검시관이 2년여에 걸쳐 연구한 끝에 자체 개발한 혈흔검사용 시약인 구아이악을 시연하고 있다.

지난 2월 17일 오후 대구 수성구 한 모텔 지하주차장에서 시신의 일부가 비닐에 싸인 채 발견됐다. 시신의 일부만으로는 신원 확인이 어려웠고, 발견된 장소가 모텔이어서 누구의 소행인지 가늠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며칠 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던 경찰을 웃게 한 것은 한 방울의 혈흔이었다. 모텔과 인접한 빌라 담벼락에서 혈흔이 발견된 것. 이후 빌라 계단에서 혈흔이 또 발견되면서 수사는 급진전했다. 빌라에 살던 사람들을 한 명씩 추려내던 경찰은 마침내 유력한 용의자를 찾아냈고, 이어 담벼락에서 발견된 혈흔의 주인을 밝혀지면서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범죄현장에 남아 있는 혈흔은 사건 해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단서다. 어찌 보면 대부분의 살인사건은 혈흔을 숨기고 찾으려는 범인과 수사기관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가 2년여 동안의 연구 끝에 범죄현장에 남아있는 오래된 자국이 혈흔(血痕)인지 여부를 구분하는 시약을 21일 자체 개발하는 쾌거를 거뒀다. 시약의 원료성분이면서 아프리카에서 자생하는 나무의 이름을 따 '구아이악'(Gum guaiac)이라고 명명한 이 시약은 혈액 내에 존재하는 헤모글로빈 성분 가운데 헤마틴(hematin)이 구아이악 화합물에 활성반응을 보이는 사실을 이용해 개발했다고 경찰 측은 설명했다.

특히 구아이악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혈흔검사 시약인 'LMG'(Leucomalachite green)와 '루미놀'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외국산인 LMG는 인체에 유해물질인 빙초산 성분이 함유돼 있는데 반해 구아이악은 천연수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 게다가 1g당 생산비가 3만6천원인 LMG에 비해 구아이악은 1g당 116원으로, 300분의 1이나 저렴해 전국 경찰서에 보급할 경우 연간 5억원가량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경찰은 추산했다.

시약을 개발한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 임채원(36) 검시관은 "LMG는 단가가 비싸 현장 수사요원들마저 선뜻 사용하기 힘든데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산 시약을 개발하게 됐다"며 "앞으로 구아이악에 대한 연구를 추가로 진행해 국제특허까지 출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용석 과학수사계장은 "LMG 대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혈흔 감식계의 바이블인 '루미놀'을 대체할 수 있도록 현재 구아이악의 형광 반응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며 "연구성과가 나올 경우 내년 국제감식협회 세미나에서 발표해 세계 혈흔 감식 시약 시장을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한편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는 2007년에는 범죄현장에 남아 있는 자국이 사람의 혈흔인지 동물의 혈흔인지를 감별하는 시약을 자체 개발해 정부혁신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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