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남북 관계 발전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8월 들어, 한반도를 둘러싼 당사국 및 주변국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5일에는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북핵 문제 및 양국 관계 정상화를 비롯한 공동 관심사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다. 억류된 여기자도 석방되었다. 16일에는 현정은 현대회장이 방북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신의에 토대한 현대와 북한 간의 경제협력 사업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군사분계선 통행 제한 해제 및 금강산 관광 재개,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 등 5개 항을 담은 현대와 아태 간의 공동 보도문도 발표되었다.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도 석방되었다. 17일에는 6자 회담 중국 측 수석대표 우다웨인 부부장이 방북하여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만났다. 6자회담 재개 및 지역 정세 변화를 비롯한 공동 관심사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미 관계 진전과 유엔의 대북 제재 완화를 위해 남북 관계 진전이 필요하다는 전략적 결단을 내린 듯하다. 전략적 결단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조언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조문 정국에서 전략적 결단은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1박 2일의 일정으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김기남 비서를 단장으로 한 6명의 조문단을 파견하였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중심으로 새로 짜여진 대남 전략팀들이 포함되어 있다. 조문단의 파견 시점에 군사분계선의 통행 제한과 북측 지역의 체류 제한을 해제하였다. 남북경협협의사무소의 기능도 재개시켰고 판문점 연락사무소의 직통전화도 복구시켰다. 북한 외교관들이 해외의 한국대사관을 찾아 조문도 하였다. 조문 정국을 통해 남북 화해협력 및 당국 간 접촉과 대화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긴 대목들이다.

조문 정국에서 남측의 통일부장관과 북측의 통일전선부장이 만났다. 800연안호 문제를 비롯한 남북 관계 현안에 대해 포괄적인 논의를 하였다. 특사조문단은 체류를 하루 연장해 가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났다. 특사조문단을 통한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에 간접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진 셈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남과 북이 협력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는 친서를 보냈고, 이명박 대통령은 "진정성을 가지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화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만간에 연안호 문제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적십자회담과 고위급회담 등 당국 간의 대화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의 교류와 협력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9월 초에는 미국의 보즈워스 특별대사가 한'중'일을 방문하여 북핵 진전을 위한 북미 양자대화 및 6자회담 재개 방안에 대해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19일 북한의 유엔 주재 대표부 김명길 공사가 뉴멕시코 주지사 빌 리처드슨을 만났다. 미 국무부와 백악관은 부인했지만 북핵 문제 해결과 관계 정상화를 위한 북미 간의 양자협상이 간접적인 차원에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내 정치상황도 북일 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진보적인 성향의 민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면 북일수교회담은 급진전될 수도 있다. 10월 6일 전후해서는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북중 외교수립 60주년 기념 양국 '우호의 해'를 결산하는 폐막식에 참석하는 행사이지만 총리의 직접 참석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에 긍정적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조문 정국은 한반도의 위기국면을 대화와 협력, 협상국면으로 전환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비가 온 뒤 땅을 더욱 굳게 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몫이다. 물론 남북 관계 진전의 앞길에는 우여곡절이 있을 수 있다. 작금은 유엔 대북제재 1874호 체제하에 있다. 한국은 국제사회의 협력하에 1874호를 적극적으로 이행하고 있다. 국제사회에 대한 설득 없이 한국의 갑작스런 대북 태도 변화는 1874호를 소홀히 한다는 국제사회의 오해가 있을 수 있다. 남북 관계 진전이 북핵 진전과 북미 관계 진전의 폭과 속도에 균형을 맞출 것을 요구하는 대목이다.

우리 정부는 현재의 상황과 흐름을 차분하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의 긍정적 흐름을 발전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일회성 이벤트 정도에 머물게 한다면 남북 관계는 매우 어려워질 수도 있다. 북미 관계와 북일 관계가 속도를 내고 중국의 중재하에 일정 수준의 북핵 문제가 진전될 경우, 남북 관계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면 우리는 매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이 제3자의 이방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이방인으로 전락하는 것은 북핵 문제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이명박 정부는 상기해야 한다.

양무진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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