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 이백순(50) 북미국 심의관은 첫눈에도 외교관이었다.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 금테 안경, 온화한 미소 뒤에 언뜻언뜻 비치는 자신감까지. 업무에 필수적인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서는 혼자 있을 때 주제를 정해 놓고 1인 2역을 하며 가상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도 외교관답게 생겼다는 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외교관을 꿈꿔서일까요? 허허허."
1985년 외무고시 19회에 합격한 그가 24년간의 외교관 생활 중 가장 기억나는 에피소드로 꼽은 일도 '협상 전문가'다웠다. 초년병 시절이었던 91년 주 EU대표부(벨기에) 2등서기관으로 부임했을 때 그의 임무는 대사관 국유화 사업(구입). 하지만 예산이 부족해 협상은 진전이 없었다. 이례적으로 대사관 1층을 외부 업체에 임대를 주는 방안까지 마련했지만 돈이 모자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고민 끝에 마지막으로 낸 아이디어는 '선물거래'(先物去來). 일단 의향서를 체결한 뒤 2달 뒤에 실제 계약을 맺는 조건이었다. "당시 벨기에 회사는 현지 화폐로 지불할 것을 요구했는데 저희가 갖고 있던 달러의 가치가 오르면 원래 예산으로도 구입이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제 예상대로 환율이 움직이면서 협상 6개월 만에 인수에 성공했죠. 선물거래란 용어 자체가 낯설었던 시절이라 제가 올린 보고서에 대해 외무부 본부에서 선물거래를 하지말라는 회신을 보내왔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 심의관은 서울대에서 독문학을 전공했지만 석사 학위는 미국 버지니아주립대에서 국제정치학으로 받았다. 그만큼 국제 정치에 관심이 많다. 최근 펴낸 '신세계 질서와 한국'이란 그의 저서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21세기 국제 정세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한국은 동서고금을 보더라도 정말 외교하기 힘든 나라 중 하나입니다. 세계를 이끄는 주변 4강국에다 북한이라는 변수까지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고난도 5차 방정식을 풀어가야 하기 때문이죠. 21세기는 20세기와 근본적으로 그 구조와 성격이 다른 시대가 왔다는 인식과 함께 미국의 세계 영향력이 줄고 중국이 급부상하는 상황에서 향후 정세 변화의 핵심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대구 경북고(58회)를 나왔지만 그의 말투에는 부산 사투리도 섞여 있다. 부산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마쳤기 때문이다. "원래 부친 고향은 달성군인데 사업 때문에 부산으로 옮기셨어요. 요즘에는 제 아들이 대구에 있는 군부대에서 복무 중이라 대구를 다시 자주 찾게 됐습니다."
그는 대구에 대해서도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고교 때 자취했던 경험이 외교관이 된 뒤에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만 대구는 너무 안으로만 향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주민들 간에 강한 소속감은 장점이지만, 국가보다 지방정부가 더 중요해지는 글로벌 트렌드에 맞게 대구만의 개성을 찾고 세계화에도 뛰어들어야 합니다. 첨단의료복합단지와 동남권신공항,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중요한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유엔 대표부 1등서기관, 청와대 외교보좌관실 선임행정관, 외무부 안보정책과장, 주미대사관 참사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클라리넷 연주가 특기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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