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야 놀자] 남북관계의 정치 경제학

최근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사안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라 해도 틀리지는 않을 성싶다. 두 건은 별개의 사안이긴 하나 남북관계의 전개에 직·간접으로 연관된다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현 회장의 행보가 이 정부 출범 이후 경색일로의 남북관계에 얼음을 깨뜨리는 역할이라면,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비록 그의 정치행적이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가 지속적으로 남북화해에 노력을 기울인 데다 그의 사후 북의 조문 사절이 서울에 오고 때맞춰 북의 조처가 뒤따르면서 일정한 화해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기에 두 사안은 묘한 연관을 짓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 오늘날 경제문제를 다룰 때 은연중에 합리적 인간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인간 행태와 인간사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기에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남북관계 역시 경제학적 합리성의 전제에서만 다룰 수 없는 사안임은 분명하다. 우선 남북관계가 경직되면 그 영향은 정치적 차원을 넘어 경제적으로도 만만찮은 부담을 줄 뿐더러 한반도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엄청난 삶의 질 저하, 더 나아가 대외적 이미지에도 마이너스가 크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독일의 통일 과정을 보더라도 결코 그들이 경제적 논리에만 매몰되지 않았음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으니 서독이 동독에게 제공한 것은 퍼주기가 아니라 폭격 정도였다고 할 수 있고, 통일 이후 동독 지역의 재건에 퍼부은 물량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필자의 '독일통일과 한반도' 참조) 물론 통일 비용이 예상보다 높아서 한때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나 2, 3년 전부터는 서서히 통일의 편익이 가시화되고 있다.

여러 논의가 있을 수도 있으나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설픈 경제적 합리성보다는 대의에 승복할 줄 아는 대승적 차원의 사회적 합의가 아닐까 싶다. 원컨대 극우적 냉전 논리는 이제 시렁에 얹어두고 어떻게 하면 한반도에 평화가 지속될 수 있을까에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할 것 같다. 아울러 70년대식 대결 논리를 추종하는 못난 행동을 자제하고, 대내외에 자존심 있는 민족임을 알리는 한편 후손들에게도 지각 있는 조상이었다는 흔적을 조금이나마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현 회장의 방북과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우리로 하여금 미몽에서 깨어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한규(계명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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