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중·일 3국의 古都를 찾아서](8)교토의 전통 보존 능력(下)

전통가옥 2만8천여채 빼곡...해마다 관광객 5천만명 북적

▲교토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인 기요미즈데라(淸水寺)로 가는 좁은 골목길
▲교토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인 기요미즈데라(淸水寺)로 가는 좁은 골목길 '산넨자카(産寧坂·순산을 기원하며 걷는 참배로였기에 붙여진 이름). 상인과 방문객의 목소리로 늘 시끄러운 곳이지만 전통 목조 2층 상가가 쭉 늘어서 있는 모습이 볼만 하다.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은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는 걸까. 교토 사람들은 재산권 행사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집을 짓거나 고칠 때도 일일이 행정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면 얼마나 불편할까. 가게 간판도 자그마하게, 지정된 위치에 달아야 하고 건물 외관도 맘대로 꾸밀 수 없다. 그래도 묵묵히 참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 너무나 신기했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하면 그네들의 정서가 훨씬 더 '상업적'인지 모른다. 1년에 5천만명 가까운 관광객이 찾아오는 것은 전적으로 행정당국의 규제와 통제 덕인 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은 어쭙잖은 빌딩이나 아파트를 보기 위해 교토를 찾는 것이 아니다. 교토의 전통과 멋을 느끼기 위해 돈을 떨어뜨리고 가기 때문이다.

◆끔찍할 정도의 규제=교토에서 간판과 고도제한은 기본이다. 더 심한 것은 조망권(眺望權)이다. 역사성과 관련된 장소에서 조망에 걸리적거리는 것은 모두 규제대상이다.

교토시는 2007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조망경관창생조례(眺望景觀創生條例)를 제정했다. 조례 제정에 앞서 옛 문헌과 시민의견을 모아 훌륭한 조망지 597개를 선정한 뒤 그중 심의회에서 38건을 뽑아 조망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규제 내용은 건축물의 표고와 디자인이다. 지정된 지역은 세계문화유산 14곳과 가로, 수변, 정원, 산세(山勢), 랜드마크, 경치, 산에서 내려다보는 경관까지 다양하다.

교토부립종합자료관 관장 이구치 가즈키(井口和起)씨는 "교토는 옛 노래에도 자주 불려지는, 뛰어난 전망을 가진 곳이 많기로 유명하다"며 "조례 제정은 1990년대 개발 붐으로 흉한 몰골의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역사적인 건물과 풍부한 자연이 어우러진 교토만의 자산을 훼손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1개의 보전 지역은 3개 구역으로 분류돼 규제된다.(그림 참조) ▷조망공간보전구역=한 시점(視點)으로부터 조망이 차단되지 않도록 건축물 등의 표고를 정하는 구역 ▷근경디자인보전구역=한 시점으로부터 보이는 건축물 등이 조망경관을 저해하지 않도록 형태, 의장, 색채를 규제하는 지역 ▷원경디자인보전구역=한 시점으로부터 보이는 건축물 등이 조망경관을 저해하지 않도록 외벽, 지붕 등의 색채를 규제하는 구역이다. 이 정도라면 중심상업지구를 제외한 웬만한 지역은 상당부분 규제 대상이다.

교토부청 공무원 가즈시케 요시오카(吉岡一茂)씨는 "교토시의 경관정책의 핵심은 건물과 집은 '사유재산'이지만 경관은 '공공재산'이라는 점을 바탕에 깔고 있다"며 "경관정책은 '교토 브랜드'의 가치를 확고하게 하고 부가가치를 낳아 지역경제에도 큰 플러스 효과가 있다"고 했다. 실제로 경관이 교토의 지가(地價)상승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조사도 있다. 2007년 일본 국토교통성의 검토 보고서에는 지가가 높은 지역으로는 ▷경사진 지붕이 많은 주택지(전통가옥 등) ▷화려한 광고 등이 적은 상업지 ▷역사적인 건축물이 많은 시가지 등을 꼽고 있다.

◆다양한 지원 제도=규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건축물의 신축과 개보수에 관한 다양한 지원책도 있다. 교토의 전통 상가 가옥인 교마치야(京町家)가 최우선 지원대상이다. 교마치야는 외관상 2층 상가로 보이지만 한 층으로 뻥 뚫려있는 곳이 많으며 전면에는 상가동, 가운데는 정원, 후면에는 주거동의 순서로 배열돼 있다.

교토부청은 2005년부터 교토시와 정부, 시민 기부에 의해 조성된 교마치아만들기펀드를 운영 중이다. 교마치야 리모델링사업은 2006년 7건, 2007년 12건을 했다. (사진 참조) 지진다발지역인 만큼 내진진단, 내진개수 지원도 필수다. 행정기관뿐만 아니라 민간단체에 의한 교마치야 재생사업도 활발하다. 교토전통가옥재생연구회, 교토전통가옥작업단, 교토전통가옥 친구의 모임, 교토전통가옥정보센터 등 여러 개의 시민조직이 밀접하게 연계돼 보존운동을 벌이고 있다.

교토시는 기존 건물에 대한 유지관리와 재건축에 대한 지원도 함께 벌이고 있다. 재건축 어드바이저(adviser·지도원) 파견제, 재건축 융자제도 등도 운용하고 있다.

교토부청 관계자는 "교토는 오래된 건물이나 집을 헐고 재건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에서 보수할 부분을 찾아내 메워나가는 형식으로 보존한다"며 "정부와 교토시가 전통건물 개·보수에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교토만의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분위기 탓에 교토의 전통가옥 수는 2만8천채로 추산될 정도로 많다. 취재진과 동행한 방재 전문가인 대경연구원의 최용준(36) 박사는 "지진이 나면 목조건물일 경우 무너지더라도 최소한 목숨을 잃지 않기 때문에 전통가옥이 많이 남았다"고 했다.

그렇더라도 전통가옥은 관광객을 모으는 원천이다. 장엄하고 화려한 건물이 없는데도 교토에 사람과 돈이 몰리는 것은 그네들만의 아기자기한 멋이 있기 때문이다. 교토 사찰중 가장 유명한 기요미즈데라(淸水寺·연간 방문객 300만명)로 가다 보면 좁은 골목길에 1km 넘게 전통 목조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싸구려 장난감을 팔고 상인들의 목소리로 시끄럽지만 짙은 밤색의 목조 2층 점포들이 쭉 늘어서 있는 자체가 볼거리다. 고풍스런 분위기는 상인들의 지나친 호객행위마저 애교로 비치게 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교토 사람들은 전통과 문화를 어떻게 가꾸고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능숙하게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었다. 교토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재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우리는 개발을 통해 새것을 만들고 이윤을 창출하는 것에만 골몰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것이 교토와 경주의 격차를 벌여놓은 이유가 아니겠는가.

글 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