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줄로 읽는 한권]마음보다 눈을 더 믿기에 꿈꾸는 것을 잊고 있는 것

"그들은 세상의 상식을 뛰어넘는 행동을 하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몇몇은 생전에 진가를 인정받기도 하지만 사후에서야 빛을 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들의 광기는 한편으로 스스로를 파괴하고 주변 세계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의 원동력으로서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된다."-무엇인가에 미친다는 것의 의미 - 중에서

『광기에 관한 잡학사전』미하엘 코르트 지음 · 권세훈 옮김/을유문화사 펴냄/570쪽/1만5천원

"만약 '베란다에 제라늄 화분이 놓여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살고 있는 빨간 벽돌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하면 어른들은 그 집이 어떤 집인지를 상상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10만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아, 참 좋은 집이구나!'하고 소리친다."-어린왕자- 중에서

『행복한 어린왕자 생텍쥐페리 앤솔러지』김하 편역/토파즈 펴냄/399쪽/1만2천원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의 프렐류드를 들을 때/나의 이성은 Havre 항구를 향해 날고/허술한 집들을 향해 날고/(중략)사람들은 꿈을 모차르트와 바흐를 무시하는/화이트칼라와 털가죽 모자를 쓴 사람들에게/석유 값으로 팔아 버린다/나는 글렌 굴드를 위해 레이 찰스/장밋빛 인생이 뒤섞여 있는 모차르트/로큰롤/모든 플랫과 음조가 맞지 않는 모든 음을/바흐의 프렐류드 안에 넣는다/

신산한 바람이 부는 일요일 저녁, 아파트 창문 너머에 걸린 붉은 노을에 모란느(Maurane)의 바흐 전주곡에 대하여(Sur Un Prelude De Bach)를 듣는다. 바흐의 원곡에 가사를 붙인 프랑스 여가수의 노래는 아름다움을 넘어 가슴에 사무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들을 사무쳐 했을까? 한 편의 시와 글, 또는 문득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던 노래에 그렇게 죽을 것만 같았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절망 같은 것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광기에 관한 잡학사전』은 문학과 철학에서 위대한 업적을 쌓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하지만 이 기록들은 책의 제목처럼 그들의 광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평범한 일상의 고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도박에 빠진 도스토예프스키, 남자다움을 드러내는데 열중했던 헤밍웨이, 역마살로 생을 마감한 시인 랭보까지 어쩌면 그들의 삶은 우리의 삶이며 우리가 늘 꿈꾸어 왔던 것인지 모른다. 단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어른들처럼 마음보다는 눈을 믿기 때문에 꿈을 꾸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어린 왕자는 우리들의 가슴 속에 자리하고 있다. 위대한 삶 역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조차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작곡에 허덕이지 않았던가? 차마 이루지 못한 사랑이 있다면 그 절절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돌이켜 볼 일이다. 시나 소설 속에서만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전태흥(여행 작가·㈜미래티엔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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