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 포석(布石)이란 용어가 있다. 중반전의 싸움이나 집 차지에 유리하도록 초반전에 돌을 벌여 놓는 일이다. 포석을 잘못하면 바둑을 이기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세계 최고의 기사(棋士)로 불리는 이창호조차 포석에 실패해 전세를 뒤집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한다. 그래서 바둑 초보자들은 포석을 가장 먼저 배운다.
포석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비단 바둑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구경북 발전에도 포석이 중요하다. 대구경북이 근대화의 주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구경북 포석을 잘 한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구의 섬유-포항의 철강-구미의 전자가 그것이다. 바둑으로 치면 포항과 구미는 바둑판의 9개 검은 점 가운데 하나인 화점(花點)이고, 대구는 화점 중에서도 중앙의 천원(天元) 격이다.
그런 대구경북이 GRDP 꼴찌란 낙인(烙印)이 찍혀 몰락(沒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첨단화 흐름을 타지 못한 탓이다. 근대화 포석은 잘했으나 첨단화 포석은 실패한 것이다. 노태우 정권 때 대구지하철 건설 업무를 부산처럼 건설교통부 산하 교통공단에 넘기지 못했고, 삼성자동차를 대구에 건설하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어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자 대구에 건설하려던 삼성자동차는 부산으로 갔고, 대구는 대신 지금은 망해버린 삼성상용차를 건설했다. 김대중 정권 때는 대표적으로 실패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밀라노프로젝트가 고작이었다.
그랬던 대구경북이 지금 새로 포석하고 있다. 고도정보화사회(高度情報化社會) 포석, 지식경제사회(知識經濟社會)를 맞아 광복 후 세 번째 하는 포석이다.
화점에는 ▷대구'김천'포항 국가산업단지 ▷경주'안동'고령 3대 문화권 ▷영일신항 ▷대구'김천 혁신도시 ▷대구테크노폴리스 ▷경주 한국수력원자력이 놓여 있다. 신서 첨단의료복합단지가 최근 추가됐고, 경남이지만 밀양의 신국제공항이 또 화점에 놓일 게다.
10년 후 20년 후 대구경북은 어떤 모습일까? 낙동강과 샛강은 낙동강 살리기 사업으로 문화와 관광이 흐르는 생명의 강으로 거듭날 테다. 경부고속철도 완공으로 경부선 폐선은 대구경북 광역전철망으로 재활용돼 대구와 경산 밀양, 대구와 김천 구미, 대구와 영천 경주 포항 사람이 지하철을 타고 왔다갔다 하게 된다. 하늘길(국제공항) 물길(낙동강) 바닷길(영일신항) 육지길이 모두 열리는 셈이다.
K2 공군기지가 이전해 대구 동구는 달성군 달서구와 함께 대구 발전의 중심축으로 거듭나게 된다. 경산-대구-영천-구미-포항으로 이어지는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DGFEZ) 11개 지구에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빼곡해 대학생들이 일자리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대구는 또 광주와 함께 연구개발(R&D)특구로 지정돼 대덕-대구-광주가 R&D의 삼각축을 형성한다. 덩달아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은 과학 인재를 길러내는 산실(産室)로 성장, 포스텍과 함께 신기술 개발로 대구경북의 먹을거리, 대한민국의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날이 머지않다. 경산-대구 수성구-대구 북구 등지는 교육특구로 지정돼 하버드'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학 등 유수의 세계 대학들이 아시아 분교를 설치하려 군침을 흘리는 땅이 될 날도 가깝다. 경주-영덕-포항-울진으로 이어지는 동해안은 우리나라 에너지의 보고(寶庫)가 된다. 울진'경주의 원자력과 영덕의 풍력에 신재생에너지 시범단지가 조성돼 녹색성장의 주역으로 떠오른다.
꿈이 아니다. 바로 지금 대구경북이 놓고 있는 지식경제사회 포석이다. 화점이 비좁을 지경이다.
문제는 포석을 잘했다고 바둑을 이기는 게 아니다. 행마를 잘해야 하고, 끝내기도 깔끔하게 해야 한다. 대구경북도 포석을 했다면 이제 내용을 어떻게 채울지 궁리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9월부터 시작될 정기국회가 대구경북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대덕R&D특구법을 개정해야 하고, 교육특구법을 제정해야 한다. 예산 국회에서는 대구경북의 화점 프로젝트 관련 국비(國費)를 확보해야 한다. '형님 예산'이란 질시를 골백번 받더라도 반드시 천원에 둔 예산을 따내야 한다. 지금부터 올 연말까지가 대구경북의 10년 후, 20년 후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시기가 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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