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시인의 집이 궁금했다. 시인의 집은 뒹구는 돌도 시가 되고 마당의 풀잎도 시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시인 이기철(66'영남대 명예교수)씨의 집으로 찾아갔다.
청도 각북면 덕촌리 여향예원. 콩밭 사이로 우뚝 솟은 2층집 여향예원은 이기철 시인이 머무르고 있는 곳이다.
시인은 2003년 11월 좁은 아파트에 더 이상 책을 쌓아둘 곳이 없어 이 집을 지었다. 건축사에게 '성냥갑 두 개를 쌓아놓은 모양'을 주문했다. "공간의 쓰임새만 생각했죠. 건축사가 너무 멋이 없다고 타박했죠."
그렇게 2층짜리 집이 탄생했다. 이름은 그의 호를 따 여향(如鄕)으로 했다. 2층 그의 서재에는 5천여 권의 책이 꽂혀있다. 두 개 벽은 책장, 두 개 벽은 유리창이다.
115㎡(35평)의 공간에서 그는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2004년 봄부터 매주 토요일 '시 가꾸는 마을'을 열어 2년 과정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 벌써 4기, 그동안 거쳐간 사람만 60여명에 이른다. 어릴 때부터 문학을 꿈꾸던 이들은 이곳에서 비로소 시를 쓰는 시인이 된다. 직업과 나이는 다르지만 서로 '가족'이라 부를 만큼 끈끈하다.
주말을 저당잡히며 그가 무료로 제자를 양성하는 것은 시인이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환원하는 차원이다. 그 역시 시에 대한 열정으로 먼 길 마다않고 찾아오는 제자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10월 말이면 일년에 한번 '들꽃시축제'도 연다. 지난해엔 고은 선생이 다녀갔다. 100여명이 옹기종기 모여 시인의 시를 듣고 얘기도 나누는 시간은 이 교수가 마련한 소박한 축제다.
청도에서 지내다 보니 청도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시 가꾸는 마을'에 청도지역 문하생이 4명이나 있고 올해는 '제1회 청소년문예학교'를 열어 청도지역 청소년들을 지도했다.
지난해 정년퇴임한 이 교수는 일주일의 절반을 여기서 보낸다. "책도 읽고 시도 쓰려고 여기를 오지만 막상 오면 할 일이 너무 많아요. 풀도 뽑아야 하고 나무도 돌봐야 하니,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라요. 재미있어요."
집 앞마당 바위 위에 모형 거북이 두 마리가 놓여있다. 이 교수의 삶의 여유와 재치를 엿볼 수 있는 소품이다.
집의 1층은 부인 이순남(61)씨를 위한 공간이다. 국전 초대작가인 부인 이씨는 남편의 시를 서각으로 해 전시해 두었다. 서예와 서각, 사군자가 어우러진 공간이다.
전원생활을 하기 때문일까. 시의 경향도 최근 다시 자연으로 돌아오고 있다. "고향이 경남 거창 시골이다 보니 초기에는 자연과 고향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죠. 이후 문학이론을 공부하다가 만난 서양의 시인들에 한동안 심취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최근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시를 쓰고 있다.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노라고. 지난해 발간한 시집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에서는 '예순번의 가을을 건너'왔으면서도 '아직도 개나리가 피면 바람개비를 물고 들판을 달리고 싶은' 마음을 풀어놓았다.
그는 오늘도 천천히 시어(詩語) 사이로 걸어간다. 그의 집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마저 시가 되어 내려앉는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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