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세상]뚜껑이 열리는 일

흔히 부아가 치밀 때 "뚜껑이 열린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제주도에서는 매일 뚜껑이 열린다. 국제적인 관광도시이자 청정 지역에서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제주도에 가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듯하다. 바로 나이트클럽을 두고 하는 얘기다. 제주도에는 영업시간 동안 하룻밤에 두 번씩 뚜껑이 열리는 나이트클럽이 있다. 밤 10시 이전과 자정 이후 등 두 차례 뚜껑을 여는데, 열리고 닫히는 10여분 동안 여러 색의 조명이 천장으로 쏟아지면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뚜껑이 열리는 순간 모든 이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하고, 휘황찬란한 조명은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돔형식의 천장이 중간에서 갈라져 양쪽으로 열리는 광경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오고, 여기저기서 그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느라 부산을 떤다. 이 나이트클럽은 겨울철 눈 내리는 날이면 잠시 동안 알록달록 조명을 받으며, 쏟아져 내리는 함박눈을 보기 위해 초저녁부터 가득 찬다고 한다.

하지만 십여 분 뒤 막상 뚜껑이 닫히고는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멋진 상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흡연 등으로 나빠진 실내 공기를 일시적으로 환기시키는 순기능도 있긴 하다. "한 번 여는 데 전기요금이 무척 많이 들어간다"는 그럴듯한 소문도 손님을 그러모으는 데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지붕 개방 이벤트를 벌이는 나이트클럽이 전국에 10여개나 있다고 한다. 머지않아 대구에도 매일 밤마다 '뚜껑이 열리는 곳'이 생기지 않을 까 싶다.

그런데 최근 수원지법은 인근 주민들의 입장을 고려, 나이트클럽의 개폐식 지붕구조 건축공사를 허용한 행정심판 결정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지붕이 열릴 경우 소음진동규제법상 상업지역 사업장의 야간소음 한도인 55㏈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고, 심야 숙면을 방해해 주거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란 게 그 이유다. 또 "개폐식 지붕이 일시적인 환기 목적으로 보기 어렵고, 이용객 유흥을 위한 것으로 소리가 외부로 나갈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하루 한두 번 20분씩 지붕을 열어 조용한 음악을 틀고 인공 눈을 뿌리는 이벤트를 벌이는 것으로 큰 소음은 없다"며 맞선 나이트클럽 측 주장을 무시한 것이다.

이 판결에 대해 대다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나이트클럽 이용객이 아닌 주민 입장에서 보면 소음'진동권 내의 주거 안정과 생활환경에 대해 직접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어 매출 증대나 수익을 올릴 목적으로 구조물의 상판을 뚫어 하늘을 보이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시내를 가다가 자주 보게 되는 '하늘이 열리는 모텔'이 그렇고, 음식점이나 카페도 뚜껑을 열어가는 추세다. 가끔 들르는 신문사 근처 한 식당에도 하늘을 볼 수 있도록 투명한 자재로 천장을 해 놓은 방이 있다. 그런데 빗물이 샜는지 그 밑의 벽지는 얼룩얼룩해져 보기가 싫고, 여름이면 뜨겁다는 이유로 그 자리를 피해 앉는다. 몇 년 전 영화나 TV에 나오는 컨버터블 차량을 무척이나 갖고 싶은 나머지 위로 유리창이 나 있는 차량을 구입했다. 한 번은 비가 오는 중에 스위치를 잘못 눌렀는데 때마침 고장이 났는지 창문이 안 닫혀 좌석을 다 적시며 서비스센터로 달려가는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수선하는 데 만만찮은 돈이 들어간다기에 임시방편으로 닫아 놓기만 한 상태라 지금은 열지도, 닫지도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운전석 위에 유리가 있어 여름철이면 직사광선이 완벽하게 차단되지 않아 차 내부가 뜨거워져 곤욕을 치른다. 차를 탈 때마다 뚜껑이 열리는 형국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뚜껑이 열리는 차량을 구입한다면 한사코 말리는 입장이 돼 버렸다. 사람이나 구조물에서 '뚜껑 열리는 일', 그거 자주 생기면 건강 유지나 장수에 좋지 않다는데….황재성 주간매일 취재부장 jsgold@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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