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불을 밝히던 오징어배들은 모두 귀항했다. 바다와 하늘, 경계를 허물었던 어둠은 먼 곳으로부터 비쳐오는 서기(瑞氣)에 서둘러 자취를 감췄다. 수평선에 걸친 옅은 구름이 붉게 물들면서 서도의 텃새들은 부스스 어깨를 턴다.
서도 뒤쪽 가제바위 위, 막 잠에서 깨어난 바다사자(강치)들이 길게 기지개를 켜며 '뿌-우, 뿌우' 황소울음을 운다. 턱을 괴고 동트는 새벽을 지켜보던 새끼들은 잔물결이 치고 오르는 바위 끝을 쫓아다니며 장난질이다. 독도강치 복원사업으로 태어난 두 쌍 네 마리의 새끼를 포함해 바다사자는 서른 마리나 된다.
물골 앞, 은빛 원통형 구조물로 바다 위에 우뚝한 해양연구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푸르게 빛난다. 부교에 매여 있는 500t급 해양연구선은 조용히 떠서 동쪽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가볍게 받아내고 있다. 연구소 당직 직원은 시설 점검을 끝내고, 해저로 연결된 통로를 따라 섬으로 건너간다.
새들이 물을 마시고 쉬어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둔 물골 30㎡의 '새들의 광장'에는 노랑부리백로, 가마우지, 검은지빠귀, 알락도요 따위가 어울려 노래하고 있다. 이들 철새와 텃새들은 서로 부리를 맞대고 물을 마시고, 더러는 홈통에 뛰어들어 물장난하며 깃을 고른다.
서도를 오르는 계단 옆에는 술패랭이꽃이 은은한 향기를 내뿜고, 철 이른 해국 몇 송이도 연보랏빛 자태를 뽐낸다. 참매 두 마리가 유유히 떠있는 서도 정상에는 훌쩍 자라버린 해송 50여그루가 실바람에 흔들린다. 파란 사철나무 잎에는 아침 이슬이 맺혀 있다.
서도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태극문양의 방파제 옆 해상호텔은 아직 나른한 잠에 취해 있고 흰 제복을 입은 몇몇 직원들은 갑판 위를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오전 9시 날아올라 오전 10시 30분 서울 한강 선착장에 내려앉을 수상비행기에 급유하고 기체를 점검하고 있는 것.
건너다보이는 동도. 경비대 막사와 관광객 편의시설이 한 건물 안에 지어진 7층 높이의 독도 메인타워. 건물 옥상 개폐식 헬기장에는 점호를 취하는 경비대원들의 구호소리가 아침공기를 가르고, 삽살개 두 마리는 꼬리를 흔들며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멀리 수평선 가까이에는 해군의 이지스함과 8천t급 해경함이 나란히 떠있고, 울릉도에서 발진한 초계기는 독도 상공을 한 바퀴 선회하고 돌아갔다.
동도 전망대에는 일출을 보려고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관광객들이 오래전부터 창가에 자리잡고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해상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건너온 이들 관광객들은 전망대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동도를 한 바퀴 둘러볼 것이다. 이들은 여름 햇볕으로 달구어진 삼형제굴바위 옆 몽돌밭에서 해수욕을 즐길 것이다. 이들은 해질녘이면 50분 만에 닿는 쾌속선을 타고 울릉도로 나가 약소불고기와 호박막걸리에 취할 것이다.
동도와 서도를 잇는 다리 부근에는 수상가옥으로 지어진 독도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다리 난간에는 빼곡히 소형 풍력발전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지붕과 다리 상판의 태양광발전 집광판은 아침햇살에 붉게 물들어 있다. 10가구마다 조용히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고봉밥을 먹은 독도마을 남정네들은 바다로 나가 냄비 뚜껑만한 왕전복을 잡고, 참치 목장에 가서 튼실한 놈들을 골라내어 뭍으로 보낼 것이다. 설거지를 마치고 곱게 단장한 아낙들은 두 시간마다 들어오는 연락선 선객들에게 독도 기념품과 오징어회를 판다.
독도는 사람이 사는, 영토 시비가 없는 섬이어야 한다. 또 독도는 체계적으로 개발돼 자연과 인공이 공존하는 섬이어야 한다. 이게 내 가슴 속의 독도다. 머잖은 장래, 아니 수년 이내 이런 독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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