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國恥日

"을미년 국모 시해 사건에 한 차례 죽지 못했고 을사늑약 때 두 번째로 죽지 못했다. 산으로 들어가 구차스럽게 생명을 연장했던 것은 오히려 기다림이 있어서였다. 이제는 희망이 끊어졌다. 죽지 않고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안동의 선비 향산 이만도가 남긴 '청구일기'(靑丘日記) 중 자신의 일생을 회고한 부분이다. 1910년 8월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단식으로 삶을 마감하기로 결심했다. 단식을 시작한 날에서 목숨을 거둔 날까지 24일 동안, 죽음의 기록을 일기로 남겼다.

이만도의 마지막 유시(遺詩)엔 뜨거운 의혼(義魂)이 서려 있다. '가슴 속의 피 다하니/ 이 마음 다시 허하고 밝아지네/ 내일이면 깃털이 돋아나/ 옥경에 올라가 소요하리라.' 경술년에 나라가 망하는 국치(國恥)를 당하자 전국에서 56명이 자결했는데 그 중 9명이 안동 사람이라는 기록도 있다.

'매천야록'을 쓴 황현 역시 나라가 망하자 절명시를 남기고 음독 순국했다.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 자진하기로 결심하고 가족들에게 남긴 '유자제서'(遺子弟書)에 그는 "조선이 선비를 기른 지 500년이 되었는데도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도 목숨을 끊는 이가 없다면 가슴 아픈 일"이라고 적었다.

내일은 경술국치를 당한 지 99돌이 되는 날이다. 몇 해 전 역사학자들에게 '우리 역사에서 가장 슬펐던 순간'을 물었더니 경술국치란 대답이 가장 많았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떨리고 울분이 치밀어 오르는데 그 시대를 살았던 선비들이 느꼈을 참담한 심경은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라를 잃은 울분에, 더 나아가 한민족의 각성을 촉구하면서 많은 선비들이 절명시를 남기고 순국한 것이다.

되새기고 교훈을 얻어야 할 국치일이지만 대다수가 이날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심드렁하게 여기는 세태다. 중국인들은 일본이 만주를 침략한 '9'18사변'을 국치일로 기억하고, 이날이 되면 '국치를 잊지 말자(勿忘國恥)' '지난날을 잊지 않는 것으로 미래의 스승을 삼자(前事不忘 後事之師)'고 되새기는 행사를 갖고 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경구를 국치일을 맞아 모두 가슴에 새겼으면 한다.

이대현 논설위원 sky@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