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을 문턱…빠져보자, 책과의 데이트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가슴 콩콩' 문학소녀로 독서 낭송회 나들이를

24일 남산4동 자치센터에서는 주민들과 함께 한 책 낭송회가 열렸다. 선듯 불어오는 바람에 참석자들은 책에 빠져들어 마치 가을 한 가운데 있는듯 했다.
24일 남산4동 자치센터에서는 주민들과 함께 한 책 낭송회가 열렸다. 선듯 불어오는 바람에 참석자들은 책에 빠져들어 마치 가을 한 가운데 있는듯 했다.

'열 장의 반성문을 쓰게 한 이유를 처음에는 몰랐다. 어느 날,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늘 같은 잘못을 저질렀던 것이다…나의 반성은 열 장의 반성문으로 모자랐다.'

이철환의 산문집 '반성문'을 읽는 책낭송회가 가을이 시작되는 길목인 24일 열렸다. 마치 야외공원에 나온 듯 활짝 열린 창을 통해 불어오는 선듯선듯한 바람을 맞으며 동네 주민 50여명은 책 속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책이 주는 정겨움과 풍요로움으로 중구 남산4동 주민자치센터에는 이미 가을이 오고 있었다.

저자 이철환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시작된 책 낭송회는 대구의 연극 배우 김진희씨의 사회로 진행됐다. 모두 함께한 '하나 둘 셋, 큐'사인에 맞춰 잔잔한 음악이 드리워지자 배우 김씨는 이철환의 산문 '사랑은 자동차보다 빠르다'를 차분하게 읽어가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미리 배부된 인쇄물을 보면서 눈으로 마음으로 따라 읽었다. 낭송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새 촉촉해졌다. 엄마를 떠나 이사하는 딸이 '엄마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차를 타고 간 엄마보다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 집으로 달려가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낭독에 이어 김진희씨는 " '반성문'을 읽으며 부모님과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 면서 "과연 우리는 엄마에게 뭘 해드렸는지 엄마의 사랑을 가끔은 성가시다고까지 생각지는 않았는지 한 번 생각해 보게 한 책이었다"고 가벼운 감상을 곁들였다.

다음 글을 읽고 싶은 사람이 없느냐고 묻자, 앞줄에서 '저요'라며 남산그린타운에 산다는 장현아씨가 벌떡 일어난다. 노인의 삼각 관계를 다룬 '세월은 흘러가도 사랑은 시들지 않는다'를 멋지게 낭송한다. 대목대목 노인의 톤으로 읽어 나가는데 보통 솜씨가 아니다. 박수가 쏟아진다. 노인을 이해하기에 딱 좋은 글이다.

이어서 삼행시 차례. 참가자들이 '반성문'이란 삼행시를 지어 발표하는 시간이다. 모두들 앞다투어 자신이 지은 삼행시를 들려준다. 아주 적극적이다. 이어서 아마추어 하모니카 연주단의 정겨운 연주 순서였다. 하모니카를 사랑하는 모임(하사모)의 연주는 우리 귀에 익은 곡들로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들려주는 '잔잔한 시냇물과 바위'의 낭독으로 끝을 내렸다.

1시간 남짓 진행된 독서 낭독회는 독서를 생활화하는데 더 없이 유용한 행사처럼 보였다. 임월선(43·중구 남산동)씨는 "친구로부터 낭송회 이야기를 듣고 참석했다. 너무 잘한 것 같다. 혼자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 낭독하는걸 들으니 더 진한 감동으로 와 닿는것 같다.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모처럼 학창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기분 빵빵하게 충전해 집으로 간다"며 다 매번 참석하고 싶다고 했다.

이 행사를 기획한 중구청 기획예산실의 이동철씨는 " 중구청 독서동아리 회원들의 추천을 받아 매달 책을 선정하고 있다. 책 낭송회에 대한 호응이 너무 좋아 주민과 같이 호흡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했다.

마치 야외공원에서 열린 듯한 독서 낭독회는 주민들과 주민자치센터가 어떻게 한몸이 되어 가야하는지 그 답을 주고 있는듯 했다. 독서의 계절이 뭐 따로 있어야 할까. 동네 주민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을 놓고 읽는다면 그게 바로 독서의 계절이며 독서하는 환경일 것이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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