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는 호색한(好色漢)이었다. 용모를 가리지 않았고 하룻밤 상대로만 여겼다. 그의 집에는 밤마다 기생이 들끓었다. 당시 대중잡지가 '메이지 왕의 기밀비까지 빼내 기생놀이에 유용했다'고 보도했을 정도다. 이때 그 유명한 일본 밀정 배정자(裵貞子)가 등장한다.
배정자는 17세 때인 1887년 망명 중인 김옥균의 주선에 의해 이토를 만났다. 밀양 아전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역모죄로 아버지가 참수당하자 관기, 비구니로 떠돌다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이토의 양녀가 돼 4, 5년간 이토의 지극한 보호와 훈육을 받았다.
그녀가 직접 구술한 자서전 '배정자 실기'(實記·1927년)에 나오는 얘기다. "말 타기, 총쏘기, 탐정술, 변장술 등을 배웠다. 이토가 직접 가르치는 사상교육도 있었다." 19세기 말에 스파이 교육을 받았다는 말인데 과장됐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구술 당시 총독부에서 나오는 밀정 월급으로 겨우 먹고살 때여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리라. 아마 오랫동안 이토를 따라다니며 정부 노릇을 했을 것이다.
어쨌든 1899년 일본 주한공사의 통역으로 귀국, 미모와 세련미를 앞세워 황실에 드나들며 밀정 노릇을 했다. 이토가 통감으로 부임하자 오빠와 남동생을 한성판윤과 경무감독관(서울경찰청장)에 임명하는 등 세도를 부렸다. 이토가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되자 식음을 전폐하며 슬퍼했다. 그후 수많은 염문을 뿌리며 조선, 중국에서 밀정 노릇을 했고 70세가 넘는 나이에 100명의 꽃다운 처녀를 모집, 종군위안부로 보내는 짓거리도 했다. 1952년 82세의 나이로 서울에서 죽었다.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 195인 명단에 들어있다. '요화 배정자'(1966) '요화 배정자 2'(1973)로 영화화돼 김지미와 윤정희가 각각 그 역을 맡았다.
박병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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