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인(道人) 같은 자유인. 가수이자 CM송의 대부, 김도향(金道鄕·64)씨의 꿈은 80세를 넘어 90세까지 노래하는 것이다. 미국가수 토니 베넷(83)은 그가 꿈꾸는 미래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 영화배우 겸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음반을 만들고 멋지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 토니 베넷이 부르는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는 그의 심금을 울린다.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희망이 새록새록 싹튼다.
김씨는 본인 역시 한국의 '토니 베넷'을 자신하고 있다. "내 노래는 단전보다 밑인 항문에서 올라오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성량이 더 풍부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이로 65세지만 노래하는 맛과 깊이가 더해져, 요즘 젊은 세대의 노래도 제 목소리로 들으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15년 뒤 80세의 노래 잘하는 가수, 김도향 기대해도 좋습니다." 실제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김씨의 마인드는 어쩌면 토니 베넷보다 더 젊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공덕역 인근에 위치한 오피스텔을 찾아가 김도향을 만났다. 1시간 넘게 얘기가 계속되면서 그의 진면목을 일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너무도 자연스레 기자를 맞이해줬고, 자신의 환갑 넘은 인생에 대해 실타래 풀듯 술술 풀어냈다.
김씨의 인생은 크게 네 갈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무남독녀로 태어나 가수가 된 괴짜 수재, 대마초사건이 하나의 계기가 돼 20년간 지킨 CM송의 대부, 10년간 혼신의 힘을 다 바친 태교음악 제작자 및 항문 조이기 전도사, 환갑 넘은 가수이자 만능 방송인 등. 기자가 보기에 그의 삶은 큰 줄기가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자유 연예인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아마도 김도향, 조영남, 이외수 정도 되지 않을까. 조영남과 이외수와는 색깔이 조금 다른 김씨의 세계를 살짝 엿보자.
◆날 이끈 힘, 아버지의 바람기(?)
김씨의 내면 깊은 곳에는 속칭 '잘나가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 동경에서 공부하고 온 아버지는 유명한 수학강사로 학원가에선 명망 높은 분이셨다. 하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의 바람기 때문에 고생한 것은 그가 자신의 일에 더 매진하는 자극이 됐다. 그가 자유로운 삶을 누리면서도 '지킬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보수적인 사고가 자리 잡은 것은 이에 대한 반발심이 작용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자신에 대한 삶의 에너지로 긍정적으로 승화시켰다. 오히려 음반을 만들 때는 내면 깊은 곳에서 감정을 끌어올 때 도움이 된 측면도 있었다.
학창시절 그는 괴짜 수재였다. 경기고교를 다니면서도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종로에 있는 우미관에서 살다시피했다. 당시 경기고에서 서라벌예전은 그야말로 딴따라 학교에 입학하는 것. 하지만 그는 후회없이 선택했고 지금도 후회없다. 현재 유명한 법조인, 의료인, 학자가 된 동창들보다 자신이 더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
"제 삶에 있어 즐거움이 없는 것은 일단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립니다. 항상 즐거워서 했고 제 삶에서 필요할 때 그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게 진정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이라 판단됐을 때는 돈이나 명예와 관계없이 주저없이 뛰어들었습니다."
◆도가 튼 CM송, '미다스의 손'
1973년 줄줄이 사탕 CM(Commercial Music)송이 처음 만든 곡. 당시 군에서 인연을 맺은 손창철씨(미국에서 식당 운영)와 '투 코리언즈'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을 때라 CM송은 부업 삼아 할 정도였다. 하지만 1974년 당시 대마초 사건으로 포크송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가수들이 전면 활동중단에 들어감에 따라 그 역시 가수활동을 접어야만 했다.
이 때문에 부업이 주업이 되며, 김도향 일생의 일대 전환기가 됐다. 그는 타고난 CM송의 대가이자 미다스의 손이 됐다. '만들었다 하면 대국민 히트작'이 되는 그의 감각은 한마디로 '도'(道)가 통했으며, 달인의 경지에 이른 것. 그는 "돌아보면 당시 수많은 CM송을 만들다 보니 아름다운 자연과 세상의 모든 소리가 아이디어가 됐고, '툭' 하면 '탁' 하고 떠오를 정도로 CM송에 미쳐 있을 때였다"고 말했다.
돈도 사실 엄청 벌었다. '맛동산' '브라보콘' '스크류바' '아카시아껌' '사랑해요 LG' 등 내놓는 것마다 히트작이었으며, CM송 제작주문은 독식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당연한 것. 하지만 김씨는 CM송의 대부에 머무르는 편한 삶을 거부했다. 이때 번 돈은 태교음반 제작에 거의 다 날아가버린다.
김씨는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3천여곡의 CM송을 만들었으며, 그가 직접 부른 곡도 1천500여곡이나 됐다. 당시 만들어진 CM송의 3분의 2가 김씨가 만든 곡이었으며, 잘나갈 때는 하루에 수십곡도 만들어냈다. 소풍 가면 CM송 부르기가 재미있는 놀이일 정도로 인기였다.
◆100억원보단 임산부와 태아가 중요
"태교음반을 만드는 일은 저에게 새로운 도전이었고, 그 과정이 큰 보람이자 즐거움 그 자체였습니다. 100억원 날린 것쯤은 후회 축에도 끼지 못하죠. 이 음반이 지금도 태아들이 잘 자라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걸요."
김씨가 10년 동안 태교음반에 심취했던 때를 돌아보면 말이 그렇지, 이 음반으로 인해 당한 경제적 괴로움은 컸다. 이로 인해 아직도 은행에 빚이 수억원 있을 정도라고 하니 말이다. 당시 그는 10년 동안 태교명반 30장을 만들면서 일본 최고의 기술진을 들여왔으며, 좋은 소리를 담기 위한 기자재를 20억원에 사들일 정도로 모든 걸 쏟아부었다.
이렇게 만든 음반이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실제 빚만 지게 되었으며, 이후 그는 결국 이 태교명반을 한 방문판매업체에 10억원의 판권을 받고 넘겨버렸다. 이제는 아무리 많이 팔려도 판매수입과 관련해 관여할 것이 없게 된 셈.
이후 그는 또 항문 조이기 전도사로도 맹활약을 펼친다. '항문을 조입시다'라는 음반을 낼 정도. 하지만 이 음반은 방송심의에서 걸려 내지도 못했으며, 이후 방송에 나와 항문 조이기가 왜 좋은지에 대해 음반이 아닌 말로 역설했다. 김씨는 지금도 매일 30분씩 3천번이나 항문을 조인다.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등 마땅히 뭘 하기가 애매한 시간에 주로 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초보자는 30분이면 약 1천번 정도 항문을 조일 수 있으며, 전문가 수준이 되면 3천번까지 가능하다.
◆'아! 세월은 잘 간다'
김씨는 내년에 발매될 앨범에 수록될 노래 한 곡을 들려줬다. '아! 세월은 잘 간다'. 뭔가 달랐다. 느낌이 오는 곡이었다. 김씨는 "이 노래는 한 번씩 무대에서 부르면 반응이 즉각 온다"며 "내년에 음반에 실리면 분명 히트곡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언제나 이팔청춘이었다. 5년 전 TV드라마 '불량주부'의 OST를 불러 인기를 끌었으며, 3년 전에는 DJ DOC의 멤버 김창렬이 직접 프로듀서한 앨범 'Breath'(숨)를 선보였다. 윤종신, 거미 등 젊은 뮤지션들도 참가했다. "사실 제 의견도 있었지만 젊은 후배가수들의 의견을 100% 따랐습니다. 그랬더니 젊은이와도 소통하면서 팬층이 더 넓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김씨는 주말이면 아침 TV프로인 '도전 1000곡'에도 가끔 나와 젊은 신세대곡들을 멋들어지게 소화시켜 시청자들로부터 '도대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랩이 들어가는 신세대곡은 그에게 신선한 도전이자 환갑 넘은 가수생활의 청량제가 되어주고 있다.
"앞으로의 김도향 콘서트는 아마 색다를 것입니다. 가수가 꼭 자기 노래만 부르란 법 있습니까. 다른 가수의 곡도 정말 멋들어지게 새로운 맛으로 부른다면 그게 관객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줄 수도 있지요. 하지만 내년에 '아! 세월은 잘 간다' 등 제 히트곡도 많이 나올 겁니다."
◆자녀교육에 대해
"제 두 딸이 공부를 너무 잘해 섭섭합니다. 이미 경쟁하는 교육체제에 익숙해진 탓이겠지요. 전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 공부를 밤늦게까지 하면 책을 찢어버릴 정도로 '공부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두 딸은 계속 A+를 받아오니 이를 어쩝니까. 두 딸이 정말 행복해지기 위해 공부를 하고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교육 '참 어디서 손을 대야 할지…'."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김도향은?
1945년생, 부인과 두 딸. 서울 마포 출생, 경기중·고, 서라벌 예술대학(현 중앙대) 연극영화과 졸업.
1970년 손창철과 함께 남성 듀오 '투 코리언즈'로 데뷔 5년간 활동.
1970~1990년대 CM송(광고음악) 히트제작자
1982~1992년 태교음반 제작, 현재 가수 및 방송인으로 활약. 서울오디오 대표.
히트 CM송:맛동산, 알사탕, 스크류바, 아카시아껌, 뽀삐, 사랑해요 LG 등.
히트곡:벽오동 심은 뜻은, 언덕에 올라, 바보처럼 살았군요, 목이 멘다, 불량주부 OST '시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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