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저, 그냥 옷 만드는 '쟁이'죠…디자이너 이상순

'의식주' 문화를 논하면서 우린 더 이상 '등 따시고, 배부르고, 대충 가려주고'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웰빙'은 그저 딴 세상에서 떠돌다 툭 떨어진 말이 아니다. '좀 더 쾌적한 공간'에서 '좀 더 몸에 좋은 음식'을 먹길 바라는 시대가 요즘의 시대다. '의식주'에서 옷만 따로 노는 게 아니다. 옷은 자신의 개성과 철학을 나타낼 수 있는 도구이자 상대방에게 자신을 각인시킬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옷을 통해 상대방의 생활리듬은 물론 심지어 생의 철학까지 짐작해볼 수 있다.

3초만 생각해보자. '옷이 날개'라는 말을 굳이 입에 올리지 않아도 우리의 눈은 상대방이 입은 옷과 스타일에 맞춰지지 않는가.

여기 흰 와이셔츠와 까만 바지를 입고 까만 운동화를 신은 채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는 한 여자가 있다. 말이 좋아 와이셔츠지 팔을 둥둥 걷어 올린 게 작업복이나 매한가지다. 키는 160㎝를 넘을 둥 말 둥. 여염집 아지매들이 누구나 즐겨 볶는 파마 스타일 대신 긴 생머리를 고무줄로 동동 묶었다. 누가 노려보듯 쳐다봐도 눈길 한번 안 주는 이 사람.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그렇다. 옷만 보고 상대방의 직업까지 맞힌다면 그건 약간 허풍을 더해 '신내림' 수준일 테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패션 브랜드 'K.D.C.깜', 혹은 '깜', 그것도 아니면 'ggam'을 모르는 게 약간의 실례일 수는 있지만 결례는 아니다. 다만 이 브랜드를 몰랐다면 지금부터 알면 된다. 지금부터 패션디자이너 '이상순(60)'이라는 사람에 대해 얘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가 '이상순' 맞습니다. 다음달에 파리 프레타 포르테에 가야 되거든요. 에휴, 근데 일주일 전에 이사까지 해서 준비해야 할 게 억수로 많네요."

바빠서 눈길 한 번 안주던 아지매를 억지로 붙잡아 말을 건넸더니 돌아온 답이었다. '프로' 치고도 심하게 일벌레일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이상순'과 연계시키면 이해하기 좋은 단어들

1.'K.D.C.깜', 'DE/BY'(이상순이 만들어낸 브랜드)

2.패션디자이너

3.(주)대경물산 기획감사

4.김두철(이상순의 남편이자 ㈜대경물산 대표)

5.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달과 해 앞의 다섯 산봉우리를 그린 그림으로 1만원권 지폐에 그려져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 병풍 배경으로 많이 쓰였으며 장엄한 느낌을 주는 게 이 그림의 특징. 하지만 이상순은 이 그림을 옷에 수놓았다.

6.프레타 포르테 파리-1961년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1년에 2번(2, 9월) 열리는 여성 기성복 전문 전시회. 50여개국 1천500개 브랜드가 참가하고 4만여명의 바이어가 참관하기 때문에 세계 패션 흐름을 미리 볼 수 있는 자리다.

◆원칙 하나, 자연스러움

-자신에게 '옷'이란.

"제 생명이죠. 늘 새로운 것이고. 일상의 90%는 옷생각에 빠져있죠. 그것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저의 스트레스 해소법이기도 하고요. 원하는 대로 옷이 나왔을 때는 그 희열이 대단해요. 그래서 '쟁이'라는 말을 쓰나봅니다. 솔직히 제게 사람들이 '패션디자이너'라는 호칭을 붙이는데 저는 (손사래친다). 그냥 '쟁이'죠."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건 창의성이라는 얘긴데. 디자인한 옷들을 보면 훈민정음, 일월오봉도 같은 게 들어간다. 옷에 글자를 넣고 한국화를 넣었는데, 치마에 묻은 먹물을 그림으로 만들어낸 신사임당을 벤치마킹한 것 아닌가.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있겠습니까. 우리 선조인 사임당의 아이디어를 약간 변형한 것이죠. 설마 저작권이 있을까요.(웃음) 농담이었고요. 한국적인 것이 세계에서 가장 잘 통한다는 걸 해외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크게 느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티셔츠에 알파벳 써넣은 옷 입는 것이랑 우리가 한글을 넣는 것이랑 근본적으로는 다를 바 없죠. 오히려 한글이 옷에 문양으로 들어가면 훨씬 예쁩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정작 본인은 외고집처럼 흰 와이셔츠와 까만 바지를 고집한다. 머리 스타일도 그렇다. 앙드레 김도 흰 옷만 입던데. 이유가 뭔가.

"편한 색깔입니다. 색깔만 흰색과 검정색일 뿐 갖고 있는 옷은 스타일이 제각각이에요.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정작 나 자신이 변하지 말아야 할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머리 스타일도 마찬가집니다. 인위적인 무언가가 나를 지배한다는 게 저와 맞지 않아요. 자연친화적인 게 좋잖아요."

-패션과 자연친화, 언뜻 들으면 안 어울린다는 생각도 드는데 왜 자연친화인가.

"자랄 때 환경의 영향인 것 같아요. 저는 경북 영양 출신인데요. 그곳은 자연이 아직도 살아있는 곳이지요. 어렸을 때 저는 꽃잎 모으기를 좋아했어요. 꽃잎을 모아서 색이 변색되는 것도 살펴보고 새로운 꽃잎도 찾아다니고. 그랬던 기억들이 아직도 제 영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요."

◆원칙 둘, 옷을 입을 사람의 입장에서

경북 영양 출생인 이씨는 1967년 대구로 유학, 대구여고를 졸업한 뒤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상학과에 들어갔다. 당시만 해도 여성의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꿀 일. 고교 졸업만 해도 엄청난 교육열이 있었기에 가능할 정도였다.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이씨에게 상학과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부기, 주산, 전표 작성을 한다는 걸 자신이 용납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2년 뒤 이씨는 대구시내의 한 복장학원을 다니게 된다. 물론 영양 집에는 비밀로 부쳤다. 이 시기가 이씨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집에서 대학까지 보냈는데 당시에는 생소한 '패션'이라니 너무 당돌했던 것 아닌가.

"적성에 너무 안 맞는 걸 어쩌겠습니까. 그러니까 '쟁이'겠지요. 집에는 제가 성공할 때까지 비밀로 부치려고 마음 먹었어요. 그런데 그 기간이 오래지 않았어요. 복장학원에서 일을 배우고 나서 현장에서 실습 1년을 마치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거든요. 그때는 양장점을 차리는 데 돈이 많이 안 들었어요. 그래서 도심 변두리에 가게를 열었죠. 제 나이 스물여덟인가 그랬을 겁니다. 여대생들과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을 때였죠. 그 친구들의 상황이나 심리를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옷을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학생들이 '언니, 언니' 하면서 단골이 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명세를 치르게 됐죠."

-유행을 예측하고 미리 만드는 게 패션디자이너지 아니냐.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야 할 텐데 어느 정도 적중하나.

"(웃음) 난감한 질문이네요. 음… 70% 정도? 그 정도인 것 같아요. 옷에는 사람들의 심리가 많이 들어가거든요. 심리를 읽고 소재와 색깔, 디자인을 결정해서 내놓는 거죠. 최근 들어 사람들이 경기불황으로 불안해하고 있잖아요. 이럴 때 복고풍이 유행하고 있거든요. 화려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심리인 거죠. 항상 옷을 입을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옷 입을 사람의 심리까지 생각한다는 건데 미술심리를 공부했나.

"그것만 했겠습니까.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야 하는 게 옷인데요."

-그렇다면 올겨울에는 어떤 게 유행할 것 같나.

"한 마디로 정의하면 '그리움'입니다. 옛 영화를 그리워하면서도 자신은 현실의 안정을 추구하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할 것 같아요. 그 때문에 예년과 다르게 엉뚱하게도 올겨울에는 갈색 계통이 유행할 것 같습니다. 브라운 계열은 약간 부유해 보이는 느낌을 주거든요. '다른 사람은 힘들어도 난 아직 괜찮아'라는 느낌을 줄 수 있죠."

◆원칙 셋, 옷만 생각하자

-속옷은 안 하나.

"돈 벌 생각했으면 그랬을 겁니다만 여전히 지금의 일이 좋습니다. 모르죠. 기회가 되면 다른 분야도 시도해 볼지."

-직업병은 없나.

"세상의 모든 스트레스가 제게 온다 해도 원하던 옷 하나가 척 하고 나오면 모든 게 괜찮아져요. 직업 때문에 생긴 병이면서, 동시에 약이 된 거죠. 마약."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구만큼 패션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도 없습니다. 하지만 다들 '서울, 서울' 하거든요. 대구에서 만든 제품들이 서울은 물론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는데도 말이죠. 옷 한벌 잘 만들면 가전제품 대여섯대 가격과 맞먹습니다. 그만큼 부가가치도 높은 것이 바로 패션입니다. 유능한 자원도 많은 곳이 대구입니다. 대구 패션 도약과 완성은 자부심에서 시작됩니다. 자부심을 갖고 대구 패션을 바라봐주셨으면 합니다."

글·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이상순은?

1949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다

1967년 대구여고를 졸업하다

1975년 대구 중구 동문동에 부띠끄 '깜', 문열다

2004년 대구패션조합 주관 '패션 피날레 어워드 2004'에서 '황금골무상'(올해의 디자이너 상) 수상하다

2004년 9월~올해 9월 '프레타 포르테 파리'에 11번 연속 참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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