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대부의 집안일세~ 뭐라고 사대부?~ 나는 팔대부의 자손일세~"
서로 지체 높음을 자랑하는 양반과 선비들의 품새가 손가락질 받는다. 체통을 앞세우고 허세를 부려 보지만 이미 양반, 선비네 모습은 구겨질대로 구겨진다.
탈은 이런 것이다. 탈은 묘한 것이라는 게 어쩌면 정확한 표현일 지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탈 속에 자기의 참 모습을 감춘다. 그 힘에 괜히 허세를 부려 보지만 결국엔 구겨지는 건 자기 체면이다. 하지만 탈은 가리는 속성만 있는 게 아니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꿈틀대는 자기 참모습을 부지불식간 꺼내 보이는 힘도 있다. 그래서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허세도 부리고 그를 통해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탈로 얼굴을 가리는 것은 염치와 예의에 억눌린 신명을 끄집어내는 일이다. 그래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매력이 있다. 일상의 틀에 얽매여 살아왔던 많은 사람들이 탈을 통해 신명을 내고 흥을 돋울 때 진정 한마당 축제판이 되는 것이다.
지금 안동은 축제 준비로 분주하다. '한국에서 가장 한국적인 곳' 으로 불리는 하회마을에도 축제의 열기가 번지고, 안동시내 곳곳엔 벌써 축제 깃발이 바람에 한껏 나부끼고 있다.
◆2009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꿈의 세계, 탈춤의 세상'
올해로 13회째를 맞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 주제는 '꿈의 세계, 탈춤 세상'이다. 여기에다 '하나의 세계 신명의 탈춤'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25일부터 10월 4일까지 열흘간 안동 낙동강변 탈춤공원과 하회마을 등 곳곳에서 축제 한마당이 펼쳐진다.
전통사회를 살아온 우리 조상들은 탈을 통해 자기 속에 내재된 것들을 언어와 몸짓으로 솔직하게 표현했다. 탈춤은 우리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흔히 만나볼 수 있는 축제 도구다. 따라서 탈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본질은 같다. 하지만 탈의 생김새나 춤사위는 같으면서도 다른, 그 지역성을 잘 보여주는 재미있는 문화 코드다.
1997년부터 시작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전통적 가치관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 안동다움을 보여주는 문화 자산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축제판에는 우리 문화와 생활상을 보여주는 탈춤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공연도 함께 어우러진다. 신명나는 탈춤을 직접 배울 수 있는 탈춤 따라배우기, 세계의 갖가지 탈들을 한눈에 비교·조망할 수 있는 월드마스크 경연대회, 창작탈 퍼포먼스 등 다양한 공연이 축제기간 내내 펼쳐진다.
◆축제의 주인공은 '탈 쓴 당신'
올해 탈춤축제는 탈을 쓰고 함께 춤추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구경꾼이 아니라 모두가 축제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보는 사람이 즐겁지 않으면 그게 축제일까. 자신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축제, 올해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겨냥하는 점이다. 말하자면 컨셉트이다.
원초적인 즐거움과 신명을 증폭시키는 탈춤 퍼레이드를 통해 축제장을 찾은 모든 이들에게 진정 축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모두가 탈을 쓰고 서툰 춤사위이지만 덩실덩실 마음껏 팔과다리를 휘저을 수 있는 축제, 그 설렘에서 축제는 이미 시작됐다.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테마로 한 다섯 가지의 동작을 기본으로 꾸민 퍼레이드에 모두를 초대한다. 여럿이 함께 추는 군무(群舞)에도 참여해보자. 누가 또 아는가, 좋은 인연이라도 맺어질지. 모두가 참여하면서 느낄 수 있는 신명과 흥취를 위해 준비위원회에서는 기꺼이 판을 펼쳐주고 팍팍 밀어주겠단다.
안동사람들은 해마다 9월이면 탈 만들기 캠페인에 너도나도 참여한다. 시민들이 함께 동참하면서 '함께하는 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기만의 탈을 갖는 것, 축제를 정점으로 서로의 마음이 하나 되고 뭉쳐지는 것이 안동의 힘이다. 탈 상설공방이나 탈춤 교육프로그램 등도 '탈의 본고장 안동'을 만들어가는 긍지이자 시민의식인 것이다.
◆열정의 축제 '눈과 입이 즐겁다'
축제기간 중 주말과 휴일에는 축제장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멋진 주말이 준비돼 있다. '올 나잇 프로그램'이다. 뭐라 해도 축제의 절정은 밤이다. 축제는 밤에 이뤄지는 것이다. 지난해 선보였던 '여덟시의 깜짝 이벤트'가 올해도 이어진다. 축제장을 찾은 모든 이들이 탈을 쓰고 춤을 추는 난장이다. 또 재미있는 공연의 포인트만을 모아 한 시간짜리로 재편성한 '버라이어티 퍼포먼스'도 눈에 띈다. 매주 토·일요일에는 필리핀을 비롯 해대만, 말레이시아, 중국, 인도네시아,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베네수엘라 등 8개국 공연단이 함께 어우러진다. 시시하게 순서대로 번갈아 무대를 오르내리는 공연이 아니라 8개 공연단이 어우러지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우리 것도 많다. 안동지역의 설화와 이야기를 테마로 한 마당극 2편과 인형극 8편이 올려진다. 안동으로 피란왔던 고려 공민왕 이야기도 극화했다. 놋다리밟기, 차전놀이 등 공민왕 몽진 관련 민속놀이에는 관객 모두가 함께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마당극은 안동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이다.
◆탈 중심도시 안동 '한국을 넘어 세계로'
올 축제에서 중요한 변화를 꼽자면 안동을 세계 탈의 메카로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될 세계탈문화예술연맹(IMACO) 국제콘퍼런스다. 올 11월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간 태국 방콕에서 열릴 이 국제콘퍼런스는 학술대회를 비롯해 탈 관련 공연과 전시, 탈 관련 콘텐츠 조사연구 등 많은 프로그램들로 진행된다. 40개국 100여개의 단체와 개인, 회원들이 참여해 탈과 탈춤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펼치게 된다. 이를 위해 지난 6월 안동시와 태국 문화부는 각서를 체결했다.
전통사회의 유형문화유산인 '탈'은 해를 거듭할수록 그 원형을 잃어가고 있고, 무형의 문화유산인 '탈춤'을 보전하는 데도 무척 힘이 든다. 하지만 이런 과제에 대해 애정을 갖고 그 결과물을 차곡차곡 쌓아간다면 탈과 탈춤은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니다. 기초를 다지고 기둥을 세워 반듯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세계탈문화예술연맹이 밀고 당겨야 한다. 사라져가는 탈과 탈문화를 보전하고 재창조하는 일은 결코 안동만의 몫이 아니다. 세계가 함께해야 할 일이다. 세계가 주목할만한 '탈 문화 중심도시 안동'이 되려면 관람객들도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2009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그 신명나는 판은 안동이 펼쳐놓지만 세계 그리고 직접 안동 땅을 밟는 관람객들이 손을 맞잡을 때 탈·탈춤문화는 비로소 생명력을 얻을 것이다.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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