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근서의 대중문화 읽기] 여배우의 결혼

얼마 전 배우 이영애의 결혼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높은 인기와 지명도에 비해 별로 알려진 것이 없는 그녀의 사생활은 사람들에게 강한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남자 배우로는 장동건이 그렇고, 이미 은퇴하긴 했지만 심은하가 그와 같은 소위 '신비주의' 전략을 쓴다는 배우였다. 아무튼 이번 이영애의 결혼은 대중문화 신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한 점을 찍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평생을 들어 가장 중요한 사건들 가운데 하나가 결혼이다. 결혼은 이전의 삶을 일부 희생함으로써 그것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확장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적 변화는 배우들에게 또한 중요한 문화적 변화를 야기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여배우는 상대적으로 더 크게 변화한다.

여배우에게 결혼은 어떠한 면에서 치명적인 독과 마찬가지다. 배우로서의 삶을 포기하거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전환해야 하거나, 주연의 자리에서 물러나 다른 위치를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 이후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들 또한 적지 않다. 하지만 많은 경우 여배우에게 결혼은 어떠한 커다란 변화의 계기로 받아들여진다. 그것이 대중문화 신에서의 상식이다.

이영애는 나름 자신의 자리가 분명한 배우이다. 물론 그녀의 연기와 그녀가 해석하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이렇게 저렇게 할 말이 많지만, 배우의 위치란 연기력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이영애를 우리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여배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대표적인 여배우들 가운데 하나라고는 말할 수 있다. 그러한 면에서 그녀의 결혼은 우리에게 하나의 캐릭터를 잃었음을 의미한다.

여배우는 시대의 아이콘이다. 여배우들은 시대를 대표하며, 그 시대의 주요한 욕망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징표가 된다. 물론 한 시대는 하나의 정서, 하나의 감정만으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시대를 특정한 여배우의 개성만으로 단정지어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시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은 한 명이 아니다. 사람들마다 개성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감정과 정서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영애 또한 시대 자체를 대표하는 배우라기보다는 시대의 어떤 한 부분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배우였을 것이다. 1990년대와 더불어 화장품 광고 모델과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2000년대에 들어 박찬욱이라는 감독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공동경비구역 JSA'(2000), '친절한 금자씨'(2005)를 찍는다. 2001년 허진호 감독과 작업한 '봄날은 간다' 또한 그녀에게는 중요한 작품이다. 늘 개인적인 매력으로만 이야기되었던 그녀의 이력에 '작품'이 추가되었고, 배우의 개성을 녹여내는 하나의 방법이 어떤 것인지 보여줄 수 있었다.

특별히 이 배우에게 애정이 있어 이러한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장진영에게도 마찬가지의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영애라는 배우를 통해 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나는 것은 성을 가리지 않지만, 결혼은 여자배우와 남자배우를 차별하기 때문이다. '해운대'의 설경구를 두고 말들이 많지만, 결혼이 그의 배우로서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확실히 이영애와는 다른 경우다.

사람들은 여자배우냐 남자배우냐에 따라서 세상을 다르게 읽는다. 이영애라는 배우를 통해 읽어내는 세상에는 남성들의 '욕망'이 자리하고 있지만, 설경구를 통해 읽는 세상은 보다 심각하고 중요하고 추상적이며 진지하다. 여배우의 지위가 높아졌고, 영화가 재현하는 여성의 위치도 달라졌다. 하지만 여배우를 통해 들여다보이는 영화, 그리고 우리 대중문화의 차별과 격의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먼저 고민하고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사람은 여배우들 자신이다. 이영애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있을까?

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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