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로변의 흉물, 軍철조망 걷어내자"

대구 미군부대·2군사령부·K-2 합쳐 26㎞

대구시 남구 캠프워커 담장 철조망. 수십년째 도심 속 흉물로 미관을 해치고 있어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대구시 남구 캠프워커 담장 철조망. 수십년째 도심 속 흉물로 미관을 해치고 있어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대구 남구 봉덕동 미군부대 캠프워커. 어른 키를 훌쩍 뛰어넘는 2.5m 남짓한 짙은 회색 담장 위에 1m 높이 철조망이 겹겹이 쳐져 있다. 시뻘겋게 녹슨 철조망 사이에는 찢긴 폐비닐이 군데군데 걸려 있다. 붉은 녹물로 얼룩진 담장에도 바싹 말라 갈색으로 변한 나뭇가지들이 흉물스럽게 붙어 있다. 40년째 캠프워커 인근에서 살고 있는 정문희(65·여)씨는 "군부대 담장과 철조망 때문에 이 주변은 항상 스산하다"며 "친지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기가 민망할 지경"이라고 했다.

시민·사회단체에서 대구 도심에 어지럽게 얽혀 있는 군부대 철조망 철거 여론이 일고 있다. 군부대는 보안을 이유로 소극적이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무엇보다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이제는 군부대 철조망을 걷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심 철조망은 어디에

대구 도심 철조망은 남구 미군부대, 수성구 2군사령부, 동구 K-2 공군기지 등 3곳에 집중돼 있다. 2군사령부는 1967년 만촌동 일대에 자리 잡으면서 부대 전체를 철조망으로 에워쌌다. 미군부대와 K-2 공군기지의 철조망 설치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추정된다. 군부대 관계자는 "해방 이후 일본군이 주둔했던 자리에 그대로 둥지를 튼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철조망 길이는 미군부대 7.5㎞(헨리 2㎞, 워커 4.8㎞, 조지 0.7㎞), 2군사령부 4.8㎞, K-2 14㎞ 등 총 26㎞에 이른다.

◆철조망 치워 주세요

1970, 1980년대 이후 군부대 주변이 속속 개발됐지만 아직까지 철조망 철거는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다.

남구 이천동 캠프 헨리. 폭 10m 소방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100여m에 이르는 구간에 철조망이 있다. 주민 김모(47)씨는 "이곳 철조망이 얼마 전 모두 새것으로 바뀌었다. 철조망을 없애면 될 일인데…"라고 씁쓸해했다. 이모(39)씨는 "철조망을 걷어내면 미군부대의 이미지도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성구 만촌동 2군사령부. 10차로 도로를 따라 1.2㎞ 구간에 높다란 부대 담장이 버티고 있고, 부대 외벽은 철조망으로 겹겹이 꼬여 있다. 택시운전을 하는 김형기(54)씨는 "군부대 담벼락도 높은데 굳이 철조망을 쳐 놓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이제 철조망을 걷어내자

철조망이 도심 흉물이라는 인식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철거 여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전 평화통일자문위원회 서삼덕(65) 부의장은 "안보 때문에 철조망을 설치하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며 "인터넷으로 누구나 쉽게 군 정보를 얻는 세상인데 부대 전체를 철조망으로 꽁꽁 동여매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대구 경찰동우회 이대원(65) 회장은 "대구가 세계육상선수권 대회를 통해 국제적 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도시 경관을 망치는 군부대 철조망부터 없애야 한다"며 "김범일 시장을 만나고 시민단체 등과 연계해 군부대 철조망 제거 운동을 펼쳐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군부대 측은 보안을 이유로 철거를 망설이고 있다. 2군사령부 관계자는 "당장 철거는 어렵다"며 "그러나 도시 미관을 위해 담장벽화 사업은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군의 경우 국방부, 한미연합사 등 여러 기관을 경유해야 하는 난관이 있다.

이에 대해 대구 도시공동체 김동옥 사무국장은 "동북아 최대 공군기지인 일본 오키나와 카데나 기지의 경우 1990년대 중반 휴양림 오키나와의 이미지와 기지 담장의 철조망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여론이 일어 일부 구간 철조망을 걷어낸 사례가 있다"며 "대구 군부대의 담장 위 철조망을 철거하는 것 역시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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