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쯤 미군 병사 두 명이 대구에서 택시를 탔다. 합승이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앞자리에 다른 손님이 탄 상황에서 흑인인 미군 병사들은 뒷자리에 앉았다. 미군들이 우리 말을 전혀 모르는 것으로 안 택시 기사와 앞자리 손님은 흑인 병사들 피부를 "연탄 같다"고 놀렸다. 이윽고 행선지에 도착한 흑인 병사들은 기사에게 달랑 백 원짜리 동전 두 개만 건넸다. 그들이 똑 떨어지는 한국어로 한 말은 "연탄 두 장 배달비만 준다"는 것이었다.
인종마다 피부색이 다른 것은 흑갈색 색소인 멜라닌(Melanin)과 관련 있다. 피부 아래층에 존재하는 멜라닌 세포가 자외선에 의해 자극받으면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멜라닌을 만들고, 만든 멜라닌을 피부 위쪽으로 올려 보내 자외선이 피부 깊숙이 침투하는 것을 방지한다. 햇볕에 많이 노출된 사람일수록 멜라닌이 많이 생성되기 때문에 피부가 검게 되는 것이다.
피부색은 생물학적 요인으로 결정되지만 그에 따른 차별은 뿌리 깊고 광범위하다. 미국'호주 같은 나라를 언급할 것 없이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서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흑인, 동남아인이 앉은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피부색이 하얀 미국인, 피부색이 짙은 동남아인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더니 그 반응도 확연하게 달랐다. 미국인에겐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 친절을 베푼 반면 동남아인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은 것이다. 뿌리 깊은 인종 편견인 '백인=우월 유색인=열등' 편견이 우리에게 없다고 부인하기 어렵다.
검찰이 외국인을 모욕한 30대 남성을 형법상 모욕죄를 적용해 약식기소했다. 이 남성은 시내버스에서 인도인에게 "더럽다" "냄새 난다"와 같은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모욕감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인종 차별 문제를 공론화하고, 자성(自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모욕하는 것은 야만적인 행위다. 국내 거주 외국인이 110만 명을 넘는데도 사람들의 의식은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인종차별금지법과 같은 제도 마련도 필요하겠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열린 정신이 절실하다.
이대현 논설위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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