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중·일 3국의 고도를 찾아서][10]경주-(1)무분별한 도시계획에 멍드는 문화재

천년의 역사를 가진 경주는 그동안 숱한 무관심과 난개발로 유물
천년의 역사를 가진 경주는 그동안 숱한 무관심과 난개발로 유물'유적 등의 문화재가 파괴되다가 이제야 겨우 문화재 보호 정책들이 마련되면서 정비가 걸음마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고분군 주변건물들이 철거되기 전 노동노서리 고분군 일대 항공사진. 사진 제공'오세윤 문화재 사진 전문작가
아파트로 둘러싸인 황성동 석실분의 현재 모습
아파트로 둘러싸인 황성동 석실분의 현재 모습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될 정도로 경제 발전을 이룩한 바탕에는 포스코가 자리하고 있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많지 않다. 철강산업이 바탕이 됐기 때문에 자동차, 조선 등 현재 우리 제조업의 근간들이 세계적인 경기 불황 속에서도 힘을 우뚝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철강산업은 일으키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다져만 놓으면 국가의 보배산업이 될 수 있다.

◆철강으로 강국이 됐던 신라

고도(古都)를 찾아가는 와중에 뜬금없이 철강산업을 말한 것은 신라 융성의 배경 역시 철강산업 발달에 있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삼국 중에서 가장 약소한 나라이면서도 삼국을 통일하고 천년 제국을 유지한 것은 따지고 보면 철기 문화가 발달됐기 때문이라는 설이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이의 근거가 경주시 황성동 906-5번지 유림마을 인근이다. 이곳은 통일신라시대 제철 유구가 발굴된 복합 유적지로 추정되는 지역. 이곳에서 우리나라 철기역사를 가늠해 볼 수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신라시대의 포스코인 셈이다.

용해로 내부에서는 다량의 유리질 철재(鐵滓)와 목탄이 발견됐고 송풍관 잔해(送風管片)들과 주조 쇠도끼(鑄造鐵斧)의 거푸집(鎔范) 파편도 다량으로 나왔다.

경주학연구원 조창현 학예사는 "황성동 제철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철기 유적지여서 철기생산 관련유적으로 정말 중요하다"면서 "발굴 조사 결과 철괴를 녹여 주조된 쇠도끼를 만들거나 단조하여 단조 철기를 제작했던 유구들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당시 신라의 철 생산과 관련된 중요 조업 기지임이 틀림없다"고 유적지의 중요성을 말했다.

◆무지로 인해 사라지는 유적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유적지도 유적 분포가 최소한 1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600여㎡의 쓰레기 더미로 방치되고 있다. 황성동에 있는 석실분(石室墳'돌방무덤)은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이게 과연 중요 유적인지 볼품없는 야적지인지 모를 정도다.

황성동은 1980년대 후반 천마총과 황남대총 쪽샘지구 등 유물이 밀집한 노동동의 구시가지를 피해 대안으로 개발된 신시가지이지만 체계적인 발굴과 고증 없이 개발 우선 정책으로 또 다른 파괴가 진행된 현장이다.

개발 초기에도 아파트를 조성하기 위한 발굴조사 전에 이미 유물들이 쓰레기 더미로 변해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지만 지역민의 무관심과 개발논리로 곧 잊혀져 버렸다.

방치된 황성동 고분군 인근에는 술집과 골프연습장, 아파트 상가 등이 어지럽게 들어서 과연 '이곳이 통일신라시대의 석실분과 철제유적이 존재했던가'라는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경주는 일제강점기, 근대화를 거치면서 새로 나는 도로가 문화재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건설되는 등 인위적 파괴 행위가 많았다. 이 때문에 본래 같은 지구였던 안압지와 첨성대, 월성, 계림, 쪽샘고분군이 사분오열됐다. 월성로도 안압지와 월성을 반으로 갈라놓았다. 시가지 지역을 가로지르는 중앙로로 인해 황남리 고분군은 쪽샘지역과 대릉원지구로 양분됐고, 문화재 위로 찻길이 만들어졌다. 이 길을 내면서 엄청난 문화재 파괴가 일어났는데, 도로 개설 당시 길옆 하수구에서 가락지와 비녀 등이 수없이 발견됐다고 한다.

국도 4호선과 동해남부선은 태종 무열왕릉을 갈라놓았다. 무열왕의 후손들은 삼국통일의 일등 공로자인 무열왕과 그의 둘째 아들 김인문, 9세손 김양의 무덤이 한 테두리에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도로가 나면서 선도산 쪽에는 무열왕릉과 무열왕릉비(귀부)가, 도로 건너 형산강 쪽으로 김인문의 귀부, 9세손 김양의 무덤으로 나눠졌다. 동해남부선 철도는 무열왕 중심의 서악리 고분군과 토우총이 발견된 장산고분군을 또다시 나누고 말았다.

무열왕릉에서 문화관광해설사를 맡고 있는 최순옥(51)씨는 "주말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그들이 '도로가 문화재를 갈라놓도록 당국은 뭘 하고 있었느냐'고 물을 때는 달리 할 말이 없어 무척 민망하다"고 했다.

◆잘난 조상에 못난 후손

신라는 BC 57년 시조 혁거세(赫居世)에서 시작해 56대 경순왕까지 992년간 존속한 천년의 역사를 가진 고도이다. 이런 도시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땅만 파면 유물'유적이 나오는 지역이지만 도시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개발독재, 경제논리, 지역이기주의, 지역민의 무관심 등이 겹치면서 파괴일로를 걷게 된다.

고도 경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고 방문한 관광객들은 경주에 들어서면 우리가 지금 천년고도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도회지의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경주고도보존회 이정락 회장은 "경주는 고대와 현대가 어울려 있으면서 보존과 개발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의 과제 속에 파묻혀 있다. 아파트 숲속에 매몰돼 버린 백률사와 체육관으로 찌들어버린 황성공원의 초라한 모습으론 더 이상 안 된다. 물론 각종 고도보존 관련 규정으로 인해 재산권 행사가 극도로 제한받는 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해결해야 한다. 이는 지방정부가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유네스코는 1995년 석굴암, 불국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고 2000년에는 남산지구 유적지를 포함한 월성, 대능원, 첨성대, 고분군 등 경주역사유적지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추가로 등록했다.

고도의 가치는 그 안에 보존된 개개의 귀중한 유적이나 건조물 같은 문화재는 물론 그 문화재를 둘러싼 자연'역사적 환경, 나아가 인류 전체에게 큰 의미를 안겨준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고도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경주에 호텔을 짓고 술집도 짓고 노래방도 만들어 주었다. 그럴수록 관광객 숫자는 오히려 줄어들어만 가고 있다. 사람들은 호텔이 좋아서, 그리고 노래방이 좋아서 경주를 찾아오는 것은 아닌 것이다.

잘 보존된 고도경주를 보러오는 것이고, 천년고도의 살아 숨쉬는 혼을 찾아온다는 것인데, 관광객들에게는 민족의 고향이 아닌 호텔과 아파트와 현대식 빌딩으로 뒤범벅이 된 싸구려 도회지가 있을 뿐이다.

"반만년 역사를 가졌다는 우리가 어째서 외국의 고도와 어깨를 견줄 만한 옛 도시 하나 번듯하게 내놓지 못합니까? 경주가 왜 가장 잘난 조상에 가장 못난 후손이 사는 도시가 되어간다는 꾸지람을 들어야 합니까?"

이채수기자 c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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