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에 나오는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강감찬의 흥화진 전투는 흥미진진하다. 물을 이용하는 신묘(神妙)한 계책에 조상의 위대함마저 느끼게 한다.
수공(水攻)은 가장 오래된 전법 중 하나다. 원래는 물을 사용해 성(城)을 공략하는 것에서 비롯됐지만 물을 이용한 모든 전법을 통칭한다. 역사책에는 신기에 가까운 수많은 수공이 등장한다.
한나라 한신이 3만의 군대로 배수진(背水陣)을 쳐 조나라 군대 20만 명을 깨트린 것은 포괄적인 수공 전법이다. 병법에서는 강을 등지고 싸우는 것이 금기시됐지만 군사적 천재는 역발상으로 군사들의 저력을 이끌어내 승리한 사례다.
반대로 실패한 배수진도 있다.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왜군 1만5천을 맞아 험준한 조령(문경새재) 방어를 포기하고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8천여 조선 군대는 전멸하고 신립도 자결하는 최후를 맞았다. 후세 사가들은 신립의 전술적 실책을 비판하지만 병졸들의 탈영이 잇따르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배수진을 쳤다고 한다.
수공을 사용한 마지막 전쟁은 2차세계대전이었다. 1943년 영국 공군은 독일 루르 지방 대형댐을 폭파해 인근의 중공업 시설을 무력화하는 작전을 세운다. 수몰보다는 용수 공급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고심 끝에 아이들 '물수제비' 놀이를 본뜬 폭탄 '댐 버스터'(Dam Buster)를 개발, 댐 폭파에 성공한다. 흑백 영화 '댐 버스터'(1954년 작)는 이 작전을 사실적으로 그린 전쟁 영화의 수작이다. 그렇지만 예상과는 달리 독일이 3개월 만에 댐 복구를 끝내 직접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수공은 물적 인적 투자에 비해 효율성이 그리 높지 않았다. 물이 공격 무기로서의 한계를 지닌데다 타이밍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의 댐 방류로 야영객 6명이 실종되면서 '수공' 논란이 벌어졌다. '수공'이란 말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은 1986년 금강산댐 사건 이후 처음이다. 당시 정부에서 '물폭탄'이니 '서울이 63빌딩을 제외하고 전부 잠길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실체는 아직도 불분명하다. 현재로선 수공은 아닌 듯 보이지만, 사람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은 점에서는 똑같은 야만이다.
박병선 논설위원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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