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산업은 1960년대 이후 한국경제를 이끈 '효자산업'이었다. 한국이 77년 달성한 100억 달러 수출액 중 섬유 부문이 31억 달러를 차지했고, 87년에는 수출 100억 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임금 의존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섬유산업은 산업 고도화에 밀려 사양산업(斜陽産業)이란 꼬리표를 달게 됐다. 기자는 국내 내로라하는 섬유기업들이 무너질 시점에 섬유산업을 담당한 적이 있다.
12년이 지난 뒤, 다시 섬유산업 분야의 취재를 맡게 됐다. 강산을 한 번 바꾸고도 남을 시간이 지난 만큼 섬유산업의 현주소가 궁금했다. 3일 경주 코오롱호텔에서 열린 '대구경북 섬유'패션업계 CEO 워크숍'은 '섬유는 잊혀진 산업'이 아니란 사실을 각인시켜줬다. 10여 년 전 알고 지냈던 섬유인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대신 새로운 인물들이 기관'단체장을 맡고 있었다. 업체 직원쯤으로 생각했던 같은 테이블의 30'40대들은 사장이나 임원들이었다. 달라진 점은 또 있었다. 방적, 제직, 염색가공, 봉제, 패션에 이르기까지 섬유산업의 모든 스트림(stream'공정)의 관계자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섬유인들은 이날 섬유를 신성장동력산업으로 키우자며 '뭉치자, 뭉쳤다!'를 외치면서 단결을 다짐했다.
대구경북 섬유산업은 12년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세대 교체와 함께 최근 섬유 분야 연구소의 거버넌스(governance'지배체제)에도 혁신이 있었다. 연구소 운영체계가 업계를 대표하는 이사장에서 소장'원장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또 혹독한 구조조정과 '밀라노프로젝트'의 영향으로 섬유인들의 인식도 많이 변한 것 같았다.
대구경북의 연도별 섬유류 수출액은 2000년 42억4천200만 달러에서 2001년 23억500만 달러로 반토막이 났다. 이후 2002년 23억7천600만 달러, 2004년 24억3천만 달러, 2006년 22억 달러, 지난해 27억5천5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직후 섬유업체'직기 수는 3천216개사'5만272대였지만 지난해에는 2천736개사'2만6천490대로 줄었다. 과거에 비해 외형은 쇠퇴했지만 안정을 찾고 있는 모습이다.
단순 임가공이 아닌 직접 수출하는 업체 수도 증가했다. 밀라노프로젝트 시작 전인 98년에는 51개사였지만 2007년엔 83개사로 늘었다. 수출단가의 경우 98년에는 2달러 이하의 비중이 50.9%에서 2007년 36.5%로 크게 줄었다. 반면 3~4달러 제품의 비중은 같은 연도 기준 1.6%에서 14.7%로 높아졌다. 저임금 구조를 바탕으로 싸구려 제품을 양산한다는 오명(汚名)에서도 벗어나고 있다.
이제 섬유산업은 '르네상스'를 꿈꿔야 한다. 섬유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하려면 저탄소 녹색성장에 맞는 친환경, 다기능, 고성능 섬유 소재 및 제품 개발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금처럼 의류용 소재와 제품을 개발하는 데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정부는 2020년까지 한국을 세계 4위의 '그린(green)섬유'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린섬유는 '초경량' '신재생' '친환경' 섬유를 말한다. 그리고 섬유산업을 금속, 세라믹처럼 소재산업으로 발전시켜 자동차 등 다른 산업의 발전을 이끄는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대구경북 섬유산업은 이를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정부의 섬유정책과 맞물려 대구시와 섬유업계는 '슈퍼소재 융합제품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0년부터 5년간 총 1천404억 원이 투자되는 사업이다. 현재 정부는 첫해 국비 지원 규모를 심의하고 있는 상태다. 이 사업은 현재 의류용 중심의 섬유산업을 산업소재용(의류 포함)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섬유산업이 IT, BT, NT 등 신기술과 융합해 새로운 대규모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지역 섬유산업의 경제적 규모도 확대돼 2015년이면 수출액이 40억 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이 마련된 만큼 이제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여건은 좋아졌다. 10여 년의 혹독한 구조조정에서도 살아남은 경쟁력 있는 업체들이 있고, 리더그룹도 젊어졌다. 섬유의 '성공 신화'를 지금부터 꼭꼭 눌러 써가길 기대한다.
김교영 정경부 경제팀장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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