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빚에 몰린 그들, 갈곳은 어디…

유흥업소로 내물리는 결혼이민여성들

대구경북에서도 외국인 여성이 나오는 주점이나 노래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구 북구의 한 노래방에서 외국인 여성 도우미가 한국인 남성에게 술 시중을 들고 있다.
대구경북에서도 외국인 여성이 나오는 주점이나 노래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구 북구의 한 노래방에서 외국인 여성 도우미가 한국인 남성에게 술 시중을 들고 있다.

한국인 남편의 폭력에 희생되거나 농촌 현실을 견디지 못해 이혼과 가출을 선택하는 결혼이민여성 대부분은 혼자가 돼도 국내에 머무르며 일자리를 찾는다. 결혼 브로커에 진 빚을 갚아야 하고, 고국의 가족 생계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이민여성들은 불안정한 체류 자격 때문에 저임금 노동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그런 생활에 지쳐 유흥업소를 전전하기 일쑤다.

◆노래방 도우미가 된 이민여성

반라의 앳된 외국인 여성 10명이 줄지어 들어서자 손님들은 손가락으로 여성을 고른다. 선택된 여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님 옆자리에 앉는다. 여성들의 손놀림은 빠르다. 양주병을 잽싸게 따고 술을 권한다. 다소 어눌한 발음으로 "오빠 날씬해요. 잘 생겼어요"라며 첫 인사를 건넨다. 옆방에서는 어설프게 한국가요를 부르는 다른 외국인 여성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5일 밤 대구 한 노래방에서 마주한 풍경이다.

노래방에서 만난 외국인 여성 도우미 대부분은 연예 비자로 입국했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다 남편의 폭력 등으로 파경을 맞은 어린 신부도 있다. 석달 전 이곳으로 왔다는 필리핀 여성 A(26)씨는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시집왔다 가정이 깨지고 노래방 도우미 등 화류계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A씨는 "함께 일하는 노래방 도우미 중에는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동생들이 꽤 있다"며 "동생들에게 한국말을 많이 배웠다"고 했다.

◆그들은 왜?

"18세나 많은 남편이었지만 베트남 현지에서 먼발치에 본 남편은 착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결혼 3개월 만에 나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남편은 정신지체 3급 장애자였고 술고래였습니다 결혼전 매달 베트남 친정에 50만원씩 보내 준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고요…." 대구 지역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베트남 결혼이민여성 B(23)씨는 "TV에서 봤던 한국 결혼생활과는 너무 달랐다"며 "석달 전 경북 한 시골 마을에서 가출했다"고 밝혔다. B씨는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일하며 한 달 평균 200만원을 번다. B씨는 "한국으로 시집오기 위해 베트남 친정집에서 결혼 브로커 비용을 대느라 진 빚이 500만원가량 된다"며 "웃음을 팔고는 있지만 매월 집에 100만원가량 부쳐줄 수 있어 근근이 버티고 있다"고 했다.

업계에 따르면 유흥업계에 종사하는 이민여성들은 전국적으로 줄잡아 1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이주 노동자가 많은 경기도 안산과 부천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구 성서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한 이주노동자는 "지역에서도 베트남, 중국 노래가 나오는 노래방 일부는 국적에 맞는 도우미를 데려다 준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이주여성 인권 단체에서는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구미결혼이민자지원센터 장흔성 소장은 "국제결혼 초기단계부터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 간에 정확한 정보 교환이 필요하고 결혼한 뒤에도 결혼이민여성들에게 경제적 기반을 갖출 수 있는 직능교육이 절실하다"고 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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