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386과 486

컴퓨터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는 중앙처리장치(CPU)다. 사람의 뇌와 같이 컴퓨터 전체를 통제하며 명령을 내린다. 메인보드나 하드디스크 같은 부품에 비하면 크기가 보잘것없지만 CPU의 성능은 컴퓨터의 성능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개인용 컴퓨터인 PC가 보급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도 바로 CPU다. 인텔사가 1980년대 이후 몇 년 단위로 내놓은 80x86시리즈는 CPU의 대명사다. 흔히 앞의 숫자 80을 떼고 x86으로 불린다.

286이 출시된 지 3년 만인 1985년 등장한 386은 PC 역사를 바꾼 것으로 평가받는다. 27만5천 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시킨 32비트 프로세서는 대용량 데이터 처리를 가능하게 하면서 시장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그 결과 사무실과 공장에만 있던 컴퓨터가 가정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인텔은 386을 통해 아예 CPU 전문 생산업체로 자리를 굳혔다.

386은 1989년 486이 개발되면서 컴퓨터에서 사라졌지만 199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서 독특한 정치'사회적 개념으로 되살아났다.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이라는 세 숫자를 뜻하는 386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공로를 앞세워 1990년대 정치'사회'경제'문화 전반에 걸쳐 진출했다. 특유의 역동성으로 빠르게 주도권을 틀어쥔 386은 두 번에 걸쳐 자신들이 지지하는 대통령을 탄생시키며 권력 실세로 한 시절을 누렸다.

그런 386도 올해가 지나면 물리적으로 완전히 사라진다. 1969년생들이 만 40세에 이르렀으니 386이 아니라 486이 되는 셈이다. 지난 10년 386이 보낸 세월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격동기 한국을 성숙시킨 주역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보다 분배와 균형의 이상사회를 좇다 실패했다는 비판이 더 큰 현실이다. 공과가 어떻든 이제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자 주도 세력으로 자리 잡은 386은 컴퓨터 CPU 486의 역할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486은 고해상도 그래픽과 CD 못지않은 사운드를 재생하는 멀티미디어 시스템으로 사용자들을 사로잡았다. 지금 봐서는 구닥다리지만 386에서 486으로의 변신은 충격적이었다. 이후 펜티엄(Pentium) 시리즈로 이어진 컴퓨터 혁명은 486의 성과를 담은 것이었다. 여전히 한국의 앞날은 386의 건투에 달렸다.

김재경 사회부 차장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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