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 가을이 왔다. 이런 말이 있는지 몰라도 나는 일종의 '영화치'(映畵痴)이다.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웬만한 영화는 상영관에서 한숨 푹 자고 나오는 수준이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는가 싶어 살펴봤더니 얼마 전 작고한 '꽃'의 시인 김춘수 선생이 어디엔가에서 자신은 영화를 보지 않는다고 쓴 걸 봤다. 민중문학론의 이론가로 유명한 비평가 염무웅 선생은 영화를 10분 이상 보지 못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도 있다. 위로가 되었다.
내가 영화를 제대로 못 보는 이유는 굳이 따지자면 성장 과정에 있다. 면소재지 시골에서 소년기를 보냈는데, 지금 중년의 독자들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오르겠지만, 시골에서는 여름철 가설극장이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시골장터 옹기전 옆 공터에 광목 천막을 치고 영화를 상영하거나, 아니면 강변 자갈밭에 말뚝을 박고 포장을 친 가설극장에서 낡은 필름의 영화를 보았다. 영화에 열중하면서도 위로 뻥 뚫린 여름 밤하늘의 은하수와 물기 많던 별들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그런데 문제는 닷새 상영할 동안 가난했던 우리 부모님은 고작 하루 아니면 이틀 정도만 극장에 보내줄 뿐이었다.
나는 가고 싶은 극장에 가지 못할 때는 마당의 멍석에 배를 깔고 엎디어서 호롱불 아래서 동화책이나 누나들의 소설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멀리서 들려오는 가설극장 선전용 노래나 영화대사에 애써 귀를 막으면서 책에 빠져들려고 안간힘을 썼다. 조그만 소도시의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거리를 배회하면서 극장과는 담을 쌓았다. 이후 성인이 되어서는 영화를 보러갈 때면 거의 반사적으로 1회 관람료가 책 반 권 값인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들어가서는 영화 내용보다는 현실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아름다운 화면의 풍경들을 주로 보고 나오곤 했다.
얼마 전에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영화를 봤다. 영화 냉담자인 나로서는 뜻밖에도 깊은 감동을 맛봤다. 나는 모르고 봤지만, 책으로 먼저 출간된 후 영화가 되어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고 다섯 개 부문에 후보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꽤 알려진 영화였던 모양이다. 열다섯 살 미소년 미하일과 서른여섯 살 여성 한나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책 읽어 주기, 샤워, 섹스로 이어질 때는 아동 성학대를 중심으로 한 성도착 저질영화인 줄 알았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나름의 감동을 더 해갔다. 내가 본 이 영화의 압권은 여성 주인공이 나치전범 재판에서 죄를 뒤집어쓰는 장면이다. 같은 여성 공범자들이 주인공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문서를 작성해서 재판정에서 확인할 것을 요구하자 '문자'를 모르는 한나는 그 수치심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문서를 확인하지도 않고 자신이 다 저질렀다고 시인한다.
삼엄한 재판정에서 많은 눈들이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글자로 빽빽한 문서를 대할 때 한나는 잠시 멈칫거린다. 창피하지만 자신이 글자를 모른다는 사실을 밝혔다면 아마 다른 죄수들처럼 짧은 언도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무기징역형을 자초한다. 인간의 자존심이란 게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장면이다.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하이델베르크 법대생 미하일은 그녀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변호사가 되어서도 그녀를 위해 어린 시절 읽어주었던 '오디세이'를 비롯한 여러 책을 녹음해 녹음테이프를 감옥으로 보내준다.
그 책 읽어준 테이프를 통해 문자를 깨우친 한나는 중년이 넘어서 석방되고, 석방되던 그날 목을 매 자살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녀가 목을 매기 위해 받침대로 사용한 것이 바로 책이었다. 책을 쌓아놓고 그 위에 올라서서 목을 매었던 것이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형언하기 어려운 삶의 역설을 보여준다. 책(글자)을 읽을 줄 몰라서 결과적으로 나치에 협력해 그 결과 너무나 긴 옥살이를 하고, 책을 읽게 되면서 그 책을 받침대로 자신의 삶을 단축하는 이 아이러니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복잡함과 깊이를 깨닫게 해주는 상징으로 충분하다. 나는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읽을 줄 몰랐던 '글자'가 우리에게는 '진리'의 다른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드문 오늘날 독서를 하지 않으면 한나가 글자를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청맹과니가 될지 모른다. 가을은 오래전부터 독서의 계절이다.
시인.경북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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