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냄새가 폴폴 난다. 무심코 돌아보니 바람이다. 어디서 불어오는 것일까. 살갗이 일어선다. 옷깃을 헤치고 들어온 바람을 느끼자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진다. 누구일까. 존재도 없고 형체도 없는 그 대상이 간절해진다.
태풍이 아니어서 은밀하고, 형체가 없으니 마음씀도 덜하고, 왔다가 소리없이 사라지니 홀가분하기까지 한 그대 이름은 바람. 옷 속으로 들어와 짜릿하게 몸을 휘감는 바람은 그렇게 일탈 또는 욕망의 메타포가 된다.
결혼 10년차 부부. 8세 아이와 함께 뉴욕 교외에 살고 있다. 남편 에드워드(리처드 기어)는 자상하고, 건실한 사업가. 아내 코니(다이안 레인)는 아들 뒷바라지에 매달려 있다.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한 가정이다. 그러던 어느 바람이 몹시 부는 날. 그 테두리에 균열이 생긴다.
뉴욕 시내로 쇼핑을 나갔던 코니가 바람에 쓰러진다. 택시는 잡히지 않고, 그때 프랑스 청년 폴 마텔(올리비에 마르티네즈)이 다가와 친절을 베푼다. 자기 아파트로 데려다가 상처를 치료하며, 그 모진 바람을 피하게 한다. 처음에 긴장했던 코니도 폴의 신비로운 매력에 긴장을 풀게 된다.
아무 일 없이 집으로 돌아온 코니는 마음이 흔들린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이 곁에 있지만, 마음은 폴의 아파트를 헤맨다. 어느새 마음속에 욕망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찾아간 폴의 아파트. 그 무겁던 의식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위험스러운 욕망의 바람 속에 자신을 맡긴다.
'나인 하프 위크'를 만든 에드리안 라인 감독의 '언페이스풀'(2002년)은 욕망(또는 육욕)의 시작과 끝을 처절하면서 비극적으로 잘 보여준 작품이다. 소용돌이 속에 몸을 맡긴 여인의 애처로우면서 안타까운 회한과 의식조차 할 수 없이 휘몰아친 광포한 바람의 위력을 잘 보여준다.
'나인 하프 위크'에서도 그랬듯이 라인 감독은 미세한 여심(女心)을 감각적인 영상과 버무리는 재주가 뛰어나다. 특히 그녀는 욕망의 공간으로 뉴욕을 잘 활용하고 있다. 하긴 뉴욕이란 도시가 카메라만 들이대면 '그림'이 되는 곳이기는 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욕망이 용광로 속에서 이글대는 곳이 뉴욕이다.
작은 카페의 화장실이나, 도서관 복도, 작은 영화관(이 장면은 영화에서 삭제되었다) 객석 등에서 펼쳐지는 남녀의 정사는 권태로운 현대인의 일상에 대한 반발심을 잘 보여준다.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몰래 화장실에서 남자를 만나 화급하게 치르는 정사는 욕망에 눈이 먼 한 여인의 위태로움에 관객까지 가슴을 졸이게 만든다.
라인 감독은 영상과 함께 음악을 참 효과적으로 잘 이용하고 있다. 오프닝에 흐르는 피아노곡 '언페이스풀'은 바람에 일렁이는 그네와 넘어진 아이의 자전거 등을 비추면서 한없이 불안정하고, 쓸쓸한 느낌을 전해준다.
작곡가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토탈 이클립스'에서 음악을 담당한 폴란드 3대 작곡가 얀 A.P. 카즈마렉. 전편에 흐르는 그의 피아노곡은 안정된 코니의 일상, 그러나 권태로운 심상과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회한으로 가슴을 치는 마음의 상태를 잘 그려주고 있다.
발매된 O.S.T. 음반에 없으면서 아주 중요한 곡이 바로 알리 파카 투레(Ali Farka Toure)의 '아이 두'(Ai Du)라는 곡이다. 느릿느릿하면서도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감이 강렬한 기타음에 묻어나는 곡이다. 이 곡에 맞춰 폴은 코니에게 손을 내밀고, 둘은 첫 육체적 교감을 가진다.
서아프리카 말리에서 태어난 알리 파카 투레는 토속적인 민요와 리듬을 채용한 노래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가수다. 1990년 기타를 놓고 고향인 팀북투에서 농사를 짓다가 프로듀서의 설득으로 다시 음반을 낸 것이 그의 가장 유명한 앨범 '알리 파카 투레 위드 라이 쿠더:토킹 팀북투(Ali Farka Toure with Ry Cooder:Talking Timbuktu)'이고, 여기의 대표곡 '아이 두'가 '언페이스풀'에 삽입됐다. 원초적 본능이 이글대는 아프리카 토속음은 코니 속에 꿈틀대는 욕망을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라인 감독은 첫 섹스의 폭풍 같은 느낌을 진행형이 아닌 회고형으로 처리한다.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코니는 사시나무 떨 듯 떨며 전율한다. 죄의식과 함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쾌감에 몸서리를 친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물로 몸을 닦는다. 그러나 이미 몸은 과거의 몸이 아니다.
왜 감독은 이 대목을 회고형으로 그렸을까. 단순한 섹스의 부수적인 느낌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까지 예감하는 심리적 혼란을 그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전적으로 코니의 잘못이 아니란 것도 보여준다. '삶이 영원한 듯 포도주를 마시라. 이 모든 것들이 너의 젊음을 기념하기 위한 선물일지니. 아름다운 장미와 잘 익은 포도주와 술에 취한 친구와 함께하자. 우린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자들이다. 이 순간이 너의 삶인 것이다.' 폴이 읽어준 이 글귀 또한 그녀의 불륜을 변호해준다.
그렇다면 진짜 죄인은 누구일까. 적어도 라인은 남편 에드워드를 지목한다. 질투로 코니가 사랑했던 남자를 죽여 유기하고,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행동하는 그 위선을 말이다. "난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었어." 그의 말은 진실일까, 사실일까.
김중기 객원기자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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