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 같이 간고등어를 좋아하는 것을 안 것은 80년대 초엽 내가 봉화로 그를 찾아갔을 때다. 그는 간고등어가 중요한 찬이 되어 있는 밥상을 내놓으며 "산골이라 먹을 게 이것밖에 없는기라"라고 했지만 나는 딴 데는 젓가락도 대지 않은 채 간고등어만 해서 밥 한 사발을 다 먹고 더 달라서 먹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긴 신 선생 고향은 여기보다도 더 산골이니까." 다음날 함께 안동의 권정생 선생한테로 가면서 장에 들러 큰 고등어 한 손을 샀다. 홀아비 살림인지라 별 찬이 있을 턱이 없었지만. 나는 밥을 너무 맛있게 먹었고. 술을 마시면서도 간고등어외 다른 안주는 손도 대지 않았다.'
한국 시단의 거목 신경림 시인이 봉화에서 농사꾼으로 자처하며 살다 돌아가신 전우익 선생의 편지글 모음 책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의 머리글에서 전우익, 권정생 선생과 안동간고등어에 얽힌 일화를 이렇게 싣고 있다. 대표적 서민 식품으로 수백 년 자리를 지켜 온 안동간고등어와 세상을 등질 때까지 청빈과 검소함을 잃지 않았던 한국 문학계 두 거장의 어울림이 사뭇 정겹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서민식품의 일품 맛, 안동간고등어 '얼간잽이'
'일품 맛'을 경험하기 위해 본지 맛탐방 일행은 안동시 당북동에 자리한 안동간고등어 직영식당을 찾았다. 전국유통에 성공한 안동간고등어가 생선구이 전문점 '얼간잽이'로 프랜차이즈화 해서 본격 산업화에 나선 집이다. 대표 전은영(29)씨는 요즘 '코스요리'를 개발하느라 여념이 없다. 얼간잽이라는 뜻은 '얼추 간을 해 삼삼하다'는 뜻. "손님들이 식탁에 앉자마자 전식(前食)으로 안동특산인 배추전을 시원하게 구워냅니다. 그리고 계절에 맞게 도토리묵이나 청포묵, 송이찜, 부추절임 등으로 마련한 코스요리 후 본 메뉴인 안동간고등어 구이를 냅니다. 식사 후 제철 과일과 함께 안동식혜 또는 수정과로 입가심을 하는 후식(後食)을 나옵니다" 전씨는 메뉴의 다양화와 고급화로 본격 프랜차이즈사업에 나선다고 했다.
'안동간고등어'로 조리되는 음식은 여러 가지다. 노릿노릿하고 기름이 자르르 배어나는 '구이'에다 매콤하고 쫄깃한 맛이 일품인 '조림', 안동간고등어를 가마솥에다 쪄내 갖은 양념과 야채를 곁들인 '찜', 고등어를 구워 매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을 얹어 먹는 '양념구이', 양념구이를 각종 야채로 쌈을 싸서 먹는 별미 '양념찜' 등으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단연 '강추'요리는 손님 코를 그저 끌어당기는 고소한 '구이'와 떠넣자 말자 입안에 확 감기는 '묵은지 조림'이다.
묵은지 조림은 주방장 황임순(57)씨만의 특별한 조리법이 빛을 발하는 음식. 직접 담아 2, 3년씩 숙성시킨 묵은지를 깔고 간고등어를 얹어 조림해 내놓는다. 표고버섯, 다시마, 양파, 마늘 등 7가지의 재료들로 우려낸 육수를 쓴다. 사용하는 농산물은 물론 안동시농업기술센터의 지원을 받아 무공해로 생산한 100% 국내산. 양념장도 최고급 영양 고춧가루와 의성 마늘, 직접 키운 매실에다 청주, 안동서 생산된 참마와 사과 등을 곁들여 10여일 숙성시켜 내놓는다.
"어때요. 괜찮지요?" 구운 간고등어를 내며 주방장 황씨는 "특유의 고소하고 간간한 맛과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육질은 안동간고등어가 아니면 제대로 내지 못할 것"이라며 무공해 농산물과 안동간고등어, 그러니까 좋은 식재료의 선택이 소비자를 사로 잡는 비법이라고 귀띔했다. "안동간고등어는 고등어가 자라던 바다 환경 그대로의 염도를 맞춰 생산해 냅니다. 이게 고등어 고유의 감칠맛을 발현시키는 비법이라면 비법인데, 요즘은 식품 유해요소 유입 방지 등 위생적인 생산에 더욱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상일 안동간고등어협회장도 말을 보탠다.
◆한식 세계화에 나서는 안동간고등어
안동간고등어는 1997년 IMF 경제난으로 무더기 도산된 지방 특산품업계의 잿더미 속에서 탄생됐다. 당시 안동과학대학과 안동시, 매일신문사와 특산품업체 등 '산학관언(産學官言)'이 한데 어우러진 국내 최초의 전통음식 산업화 클러스트 성공사례였다. 당시로는 클러스트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를 때. 요즘 화두가 된 한식 세계화, 전통음식 산업화가 이미 그때 당시 이뤄진 셈이다. 먼저 스토리텔링을 위해 안동 영덕 간 간고등어 길놀이를 복원하고 브랜드화를 위해 홍보에 주력한 다음 전국 유통에 나서 금세 백화점과 마트, 홈쇼핑 등 온-오프라인 유통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30여 가지의 퓨전화로 상품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이젠 생선 전국유통 부문에서 단연 선두를 지키고 있다. 그 선두는 소비자들이 선택하기에 가능한 것.
이를 위해서는 '맛'에 대한 승부가 필수. 고등어 배를 가르고 내장을 제거한 후 세척과 습식염장, 핏물제거, 건식염장, 저온숙성, 진공포장, 냉동·냉장유통 등 간고등어가 소비자들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전 과정은 전통의 맛을 그대로 살리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50년 간잽이 이동삼 명인의 철저한 전통 염장비법에다 엄격한 품질관리, 소비자들의 입맛에 따른 다양한 제품 개발 등이 '고등어공장' 10년 성공신화를 일궈냈다.
특히 지역 문화산업의 하나로 성장해 오고있는 안동간고등어가 빼놓지 않았던 것은 '문화산업 콘텐츠'에 대한 지원. 지역문화 콘텐츠 발전 효과를 고스란히 받아 안동 간고등어 브랜드 가치를 높인 것. 주고받기식으로 기업과 문화의 상생이다. 안동탈춤축제와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의 안동방문을 기점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는 브랜드 '안동'의 유·무형적 가치가 안동간고등어 산업화와 세계화로 여지없이 흡수되고 있다.
◆지구촌 식재료화로 세계인 입맛 공략
안동간고등어의 첫 해외진출은 2001년 4월 일본 오사카식품박람회. NHK를 비롯해 요미우리, 간사이 TV에 잇따라 소개됐다. 해외 진출 가능성을 보여준 계기가 됐다. 이후 서울국제식품박람회, 수산식품박람회, 부산국제수산무역엑스포 등 바이어들을 만날 수 있는 명성있는 박람회 참가는 물론 홍콩국제식품박람회, 뉴욕국제식품박람회, 동경식품박람회 등 직접 해외 바이어를 찾아 나섰다.
이로써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몽골 등 아시아 지역과 미국, 캐나다를 비롯한 미주지역, 호주, 남미의 칠레까지 안동간고등어 수출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물량부족 등으로 한때 중단됐던 수출 물량 확대에 다시 박차를 가하고 있다. 더불어 안동간고등어를 각 나라의 기초요리 재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세계인 음식 재료화' 연구에도 불을 붙였다. 지역과 나라마다 색다른 고등어 음식을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한다는 기본 계획으로 미국에서는 생선스테이크, 일본에서는 스시로, 이탈리아에서는 베이컨 대신 안동간고등어가 사용된 카르보나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또 올해부터 UN산하의 세계 빈곤퇴치 NGO 단체와 함께 아프리카 빈곤퇴치를 위해 염장기술을 수출할 계획이다. UN기금으로 냉동시설이 빈약한 아프리카 내륙 깊숙이 다양한 생선을 염장형태로 유통시킬 수 방법을 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 이 계획엔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이 아프리카 빈곤퇴치를 위한 정신운동 차원으로, 안동간고등어 염장기술은 냉동시설 없이 열대지방 생선유통을 이뤄 식재료 공급 차원에서 참여하게 된다.
"아주 간단한 가공과정도 한식세계화에 경쟁력이 있습니다. 국내 어느 곳에도 있는 그 흔한 간고등어를 제치고 특화해서 전국 유통에 성공한 안동간고등어가 사례지요. 간단한 가공은 각국의 음식문화에 걸맞게 다양하게 조리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식재료로서의 장점이 됩니다"
창업컨설턴트 고영학 에이스라인 대표는 "앞으로 아마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안동간고등어를 재료로 한 한식문화를 접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향토음식산업화 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y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프리랜서 강병두 pi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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