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녁, 밤새 걸으며 보는 금호강변의 메밀꽃과 돼지감자꽃이 무척이나 반갑다. 낮에 보는 신천과 금호강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신천변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어찌 알았으랴. 밤을 새며 걷는 울트라 도보 신천코스(50㎞)만의 매력들이 달빛에 녹아든다. 마라톤 코스보다 더 긴 도보 코스를 걸으면서 이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먼길도 그리 팍팍한 것만은 아니다.
5일 밤부터 6일 오전까지 진행된 제5회 인도행 영남울트라 도보대회. 참가자 110여명은 고행 중에도 이런 기쁨을 누렸다. 1년에 두 차례 대구와 부산에서 번갈아 열리는 이 도보대회는 대구서는 두 번째. 꼬박 밤을 새우며 12시간을 걷고 또 걷는 것이 참가자들의 지상목표다. 더러 낙오하고 포기하지만 그래도 참가자들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110여명 중 94명이 끝까지 버텨내 지난 4회 대회 때보다 완보율이 높았다.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줄여서 인도행 http://cafe.daum.net/dobojourney) 주최로 열린 이 대회는 서울에선 벌써 10회를 치렀다. 한강변을 따라 걷는 100㎞코스도 있다. 웰빙바람을 타고 가정주부나 가족단위 참가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
이번 대구대회에는 칠순이 넘는 고령에도 딸과 함께 참가한 사람도 있었고, 모두 10쌍의 부부가 나란히 걷기에 도전했다. 중·고교생 딸이나 아들을 데리고 나온 참가자들도 눈에 띈다. 뛰지 않고 걷는 방식이기에 출발시 마라톤과는 또 다른 긴장감이 흐르지만 가을밤 가족단위 참가자들의 표정에서 비장함과 여유로움이 교차한다. 이들이 울트라 도보에 왜 매혹됐는지 찾아가봤다.
◆신천은 아름다운 도보코스
대구 신천은 주변 풍경이 아름다우면서도 지루하지도 않고 안전한 코스로 영남권 울트라 도보 참가자들이 선호하는 코스다. 서울의 한강이나 부산 낙동강변 코스처럼 밋밋하지 않고 아기자기하다는 평이다. 만약 걸으면서 이따금씩 시선과 마주치는 구조물이 없다면 지루하다 못해 막막한 느낌마저 들 수 있다. 하지만 신천은 1, 2㎞만 걸으면 다리가 마중 나오기 때문에 다리 밑을 통과하는 재미도 적잖다.
출발은 오후 9시 30분 신천 동신교 주차장. 먼저 남쪽으로 발을 돌려 희망교-상동교-용두교를 지나 제1체크포인트인 가창교까지 갔다가 출발지로 되돌아오면 벌써 15.5㎞. 동신교에서 이제는 북쪽을 향해 칠성교-도청교-침산교를 지나 제2체크포인트인 노곡교에서 잠시 야식이나 간식을 먹고 숨을 돌린 후 팔달교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오면 다시 침산교다. 여기서 산격교(30㎞지점)-금호1교-금호2교를 지나 마지막 제3체크포인트인 공항교에 다다르면 37.8㎞.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이제는 출발지로 돌아갈 차례다. 침산교까지 왔서 남쪽으로 출발지인 동신교로 돌아오면 50㎞ 코스가 완성된다.
김두현 영남울트라 도보 조직위원회 담당자는 "대구 신천코스가 코스구성이나 안전성 측면에서 서울이나 부산보다 뛰어나다"며 "참가자들도 갈수록 늘어나고 대회 준비도 잘 돼 이번엔 성공적인 대회를 치를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물 좋고 정자에 풍경까지 받쳐준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하지만 모든 게 그리 돼라는 법은 없다. 이번 대회의 전체코스 중 아쉬운 점이 눈에 띄는 것도 이런 이치다. 금호2교와 공항교 쪽 신천변 보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아 어두운 밤에는 울퉁불퉁한 길을 걷게 돼 참가자들이 어려워 한다.
대회 조직위 측은 이 대회의 목적에 대해 ▷건강한 도보문화의 확산 ▷대구의 걷기좋은 길 조성 ▷대구시민들의 건강증진을 내세우고 있다. 내년 대구대회에는 더 많은 참가자들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이에 대비해 단단한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이와 더불어 대구에는 매일 평일 2시간씩 걷는 도심 도보모임도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8시 10분에 모여 2시간가량 걸은 뒤 헤어지는 것. 이 모임에는 카페 열성회원 10~30여명이 매일 참가한다. 월요일은 두류공원, 화요일은 대공원역, 수요일은 동촌유원지, 목요일은 1호선 진천역, 금요일은 신천 동신교에서 모인다. 평일 참가자들은 모두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 집결한다.
◆대회 참가자들 다양한 표정
이번 대회에 첫 참가자부터 1회 대회때부터 쭉 참석한 전 대회 참가자 모두 신이 났다. 군대 야간행군처럼 밤새 힘들게 걸어야 하지만 걷는 게 좋거나, 먼 길 걸어볼 요량으로 스스로 참가한 만큼 힘들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이다.
모두 다섯 차례 울트라 도보에 참가한 조성욱(47·대구 수성구 범어동)씨는 "틈틈이 등산으로 체력을 단련해왔지만 50㎞도보는 꽤 긴 코스"라며 "그래도 밤새 달빛 따라 아름다운 길을 걷다가 금호강에 떠오르는 아침해를 보니 기분이 그만"이라고 완주 소감을 밝혔다.
이번에 세 번째로 참가한 김경화(46·여·수성구 만촌동)씨는 "할 때마다 힘이 들어 걸을 때는 내가 또 왜 신청했을까 후회도 하지만 그래도 걷고 난 뒤에 오는 자부심과 성취감 때문에 아마 다음에도 또 신청할 것"이라며 울트라 도보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인도행에 가입해 세 번의 평일도보 후 바로 울트라에 도전한 김현주(36·여·북구 구암동)씨는 "생각보다 내가 잘 걸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코스 도중 나홀로 걸을 때는 다소 두려움도 느꼈지만 여럿이 함께 걷지 않았다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대구에 오래 살았지만 금호강 길이 이렇게 아름다운 길인지는 몰랐다.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금호강 길은 그야말로 환상"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이들은 지치지 않는 듯했다. 70세 이상된 참가자 2명 모두도 완보했다. 부모와 함께 온 학생들도 거뜬히 완보했다. 특히 학생들은 밤에 헤드랜턴을 쓰고 걷는 기분에 신기한 듯 여기저기를 비추며 신나게 걸었다.
일상을 벗어난 느낌과 세상이 잠든 사이에 도심 도보를 즐기는 기분 탓일까. 모두들 달콤한 주말밤을 오롯이 길에 바쳤지만, 살면서 쉽사리 경험하지 못한 것을 해냈다는 더 큰 기쁨을 얻은 듯했다.
◆이런 점은 유의해야
울트라 도보는 중학생 이상 신체 건강한 사람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하지만 도보를 만만하게 보고 덤벼들 일은 아니다. 전날 숙면과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거뜬하게 제한시간 12시간 도보를 성공할 수 있다. 전날 음주를 많이 하거나 격렬한 운동은 삼가는 것이 꼭 지켜야 할 일. 참가자들은 야광랜턴와 코스 약도, 식수를 지참해야 한다. 물론 주최 측이 식수를 준비해 출발 때 나눠주고 코스 중간에도 3번 식수를 공급하지만 개인 식수는 준비하는 게 좋다. 야간에는 뚝 떨어진 기온에 추워질 수 있기 때문에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재킷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 코스 중간쯤 되는 노곡교 체코포인트에서는 야식도 제공된다. 50㎞ 도보가 끝나고 나면 아침식사도 제공된다.
대회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무리했다 생각이 들면 스스로 잘 조절해 걸어야 하고 걷는 도중에 잠시 쉬어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며 "아직까지 대회 도중에 크게 다치거나 몸이 아파서 앰뷸런스 신세를 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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