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의 시대, 크고 화려한 간판이 대세였다. 보이기 쉬우면 최고였다. 특히 최대 길이 30m, 최대 면적 1천50㎡(300여평)의 옥상간판 설치를 허용한 옥외광고물법은 공룡 간판을 양산했다.
그러나 간판 난립과 불경기, 광고매체의 다양화는 옥상간판 수난 시대를 불러 왔다. 광고 유치에 실패한 오래된 간판과 광고 내용을 벗겨낸 백판은 주변 건물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도심 흉물로 전락했다.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대구 도심 경관 개선 사업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옥상간판. 해결책은 없을까?
◆015 삐삐 간판의 비밀?
대구 중구 공평네거리를 둘러보면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알 수 없는 015 삐삐 옥상간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터넷 한 포털사이트에는 015 삐삐 간판이 '국방부의 비밀병기'라는 엉뚱한 글이 올라 있다. '삐삐가 사라진 지 꽤 되는데 왜 간판이 걸려 있는지 궁금해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군사시설, 예를 들어 방공포·방공미사일을 광고판 안쪽에 숨겨둔다는 말을 들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단순하다. 오래된 간판일 뿐이다. 중구청 간판 담당은 "삐삐 광고 계약 기간이 끝난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새 광고를 유치하지 못한 간판"이라며 "문서 보존 기관이 끝나 정확하게 언제 설치됐는지 알 수 없지만 1990년대 후반쯤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대구 시내 곳곳에는 오래된 간판이 넘쳐난다. 대로변 옥상간판을 유심히 쳐다보면 임대문의나 광고문의(전화번호) 문구가 함께 적힌 것들이 적지 않다. 광고 내용을 벗겨 백판으로 놔두느니 그냥 방치한 것이다.
공평네거리 015 삐삐 옥상간판은 10여년 만에 교체를 앞두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7일자 교체 신고가 확인됐다. 중구청 간판 담당은 "도시 미관에 악영향을 줘 고민하던 차에 광고업체 교체 신고가 접수됐다"며 "30일 교체 예정의 새 광고는 '상주곶감'"이라고 밝혔다.
◆옥상간판을 어찌할꼬?
대구시는 지난해 11월 옥상간판 신규 설치를 전면 금지하는 간판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면서 구청장·군수가 '특정구역'으로 지정하는 권역은 간판 수량, 유형, 크기, 배치 등에 대한 특색 있는 기준을 적용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대구 동구 율하 1·2지구, 신서 혁신도시에는 옥상간판이 설 자리가 없다. 개발 이전부터 옥외광고물 특정구역으로 지정해 옥상간판 설치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 옥상간판은 특정구역 고시가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특정구역 고시가 철거 규정이 없는 상위법(옥외광고물법)에 우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래된 옥상간판과 백판은 대체 어떡해야 할까.
서울 동작구청은 옥상간판(백면) 디자인 개선 사업을 추진했다. 광고 내용을 벗겨낸 백판에 공공 광고물을 게재했다. 백판 다자인 개선 사업을 기획한 동작구청 도시디자인과 류우식씨는 "광고업체와 3년간 10만원에 계약했다"며 "도시 경관 개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라고 했다. 류씨는 또 "현행 옥외광고물법상 광고 내용이 없는 백판은 표시 내용 위반으로도 볼 수 있다"며 "행정 관청과 광고업체가 윈-윈을 택하면 대구 역시 백판을 활용한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공익 광고를 기획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대구에는 도심 흉물을 활용해 미관 개선 광고 사업을 실시한 선례가 있다. 지난해 말 한국전력 대구사업본부가 추진한 '지상배전기기 외함 활용 광고사업'이 그것이다. 대구 중구 공평네거리 구간을 비롯한 몇몇 지상 배전함에 외함을 따로 설치해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성공을 기원한다"는 문구와 함께 육상 경기 장면을 형상화한 광고 그래픽을 실었다.
불법광고물 부착과 쓰레기 투기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상 배전함을 도시 미관 개선 광고물로 활용한 사업이라는 점에서 대구시가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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