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대구를 국제적 쇼핑도시로 만들려면

인간의 활동은 옛날부터 가족과 상업활동이 중심이 되었다. 이를 통해 집을 짓고 마을이 형성되고 도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특히 세월이 발달할수록 상업활동이 지역성장에 더욱 중요해졌다. 과거 번영을 누리던 지역들은 대체로 중개무역을 통한 상업활동이 번성한 지역이었다. 문명의 꽃을 피웠던 실크로드는 상업활동의 중심지대였고 항구도시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물자를 사기 위해 사람이 붐비는 곳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마을에 통신과 상하수도 시설이 갖춰지면 가장 먼저 생겨나는 것은 대형 슈퍼마켓인 월마트이다.

원시시대에는 남성은 주로 사냥을 하고 세력 영역 확보에 주로 치중하고 여성은 물자 확보에 주력했다. 그러나 오늘날 남성과 여성은 모두 물자 확보 활동을 한다. 상점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은 남녀 불문이다. 이렇듯 소비자로서 물건을 구입하는 행위를 미국의 저명한 경영 컨설팅 전문가인 에디 와이너는 '쇼핑' 행위로 표현하고 있다. 쇼핑은 인간의 정체성이 되어왔으며 또한 남녀를 초월한 삶의 방식이 되었다. 살기 좋은 곳이 되기 위해서는 쇼핑하기가 우선 다른 지역보다 앞선 지역이 되어야 한다.

대구는 과거 쇼핑이 아주 발달된 도시였다. 서문시장, 교동시장, 칠성시장 등은 전국적인 쇼핑 장소로 명성을 떨쳤다. 40여 년 전 만경관 근처의 넓은 공터에서는 밤에 전등불을 밝힌 야시장이 휘황찬란하게 펼쳐져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쇼핑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대구가 떨쳤던 과거의 쇼핑도시 위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대구만의 독특한 쇼핑 파워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 길을 찾아야 한다.

대구는 과거부터 섬유도시였다.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대구는 섬유 생산으로 큰 돈을 벌었다. 그 명맥은 이어져 얼마 전 밀라노 프로젝트를 통하여 섬유도시의 선진화를 꾀하고자 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몇 해 전부터는 해마다 국제섬유박람회를 개최하여 섬유와 패션산업 육성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11일부터 13일까지 3일 동안 개최되었던 대구국제섬유박람회는 약 3천800달러의 구매계약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총 254개에 이르는 원단, 염색, 원사업체 등이 참여하고 3일 동안 모두 1만4천 명이 참관했다. 아쉬운 것은 외국업체의 참가율이 전체 참가업체의 9%에도 못 미치는 22개 업체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중국을 제외한 동아시아, 미주, 유럽 등의 바이어 및 업체의 참가가 부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제섬유박람회가 대구에서 필요하다는 것을 수년 전 필자도 강조했다. 그러나 아직도 실천되지 않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즉 대구섬유박람회를 일반사람들이 국내외 유명 의류 제품과 가죽 제품 등을 싼 가격으로 마음껏 '쇼핑'할 수 있도록 과감히 변신시켜야 한다는 제안이다.

지금의 대구섬유박람회는 바이어들이 원단과 원사 등을 상담하고 구입계약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섬유박람회에서 일반인들은 전시장을 그냥 구경하는 데 그치고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박람회가 일반 소비자와는 괴리되고 섬유 생산자만을 위한 초단기 이벤트에 불과하다. 만일 섬유박람회의 성격을 바꾸어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섬유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하는 '쇼핑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축제로 승화시키면 대구가 과거의 쇼핑도시 위력을 되찾는 데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가령 대구섬유박람회를 2, 3주 정도의 기간으로 하는 것이다. 이 박람회 기간 동안에 국내외 주요 의류, 신발, 혁대, 지갑, 가방과 핸드백 등 가죽제품, 우산, 스카프, 옷에 다는 브로치 등등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집중 판매하는 '대구국제섬유쇼핑박람회' 성격을 지닌다면 그 반응은 실로 엄청날 것이다. 특히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일본, 미국 등의 주요 패션 선진국의 명품 의류와 가죽제품 등을 저렴한 가격으로 박람회 기간 동안 세일한다면 전국의 남녀노소가 대구로 쇼핑하러 모일 것이다. 나아가 이웃 일본, 중국, 홍콩 등 동남아, 심지어 구미에서도 대구 박람회에 쇼핑하러 대거 몰려들 수 있을 것이다. 박람회 기간에는 대구의 그 유명한 야시장도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섬유박람회와 쇼핑을 결합하는 이노베이션을 위해서는 대구시 당국자와 상공업체가 일심동체가 되어 구미의 유명 패션업체와 박람회 기간 동안의 명품 세일에 대한 교섭을 해야 하고 중앙정부에서는 박람회 기간에 판매하는 해외브랜드 상품에 대해서는 수입관세를 매기지 않음으로써 제품가격을 낮추는 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서북부지역의 시애틀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명품아울렛이 4년 전에 생겼다.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이곳은 붐빈다. 특히 한국인이 많이 찾고 관광버스의 단골 코스로 급부상하고 있다. 시애틀 지역에서의 명품아울렛을 대구섬유박람회에 접목시키는 '발명'이 필요하다. 내년 3월의 대구섬유박람회를 대구섬유쇼핑박람회로 변신시켜 전국에서, 해외에서 일반 소비자를 대거 대구로 끌어들이고 대구가 일약 국제적 쇼핑도시로서의 새로운 브랜드를 가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보자.

박양호 국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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