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 중 엔진정지 제도가 시행 3년이 넘도록 잠자고 있다. 운전자는 제도조차 모르고, 단속도 이뤄지지 않아 껍데기 제도로 남아 있다.
이 제도는 소방방재청이 2006년부터 폭발의 위험성과 공회전으로 환경 오염과 유류 낭비를 줄이기 위해 도입했다. 현행법(위험물안전관리법)대로라면 이 제도 위반 주유소는 1차 50만원, 2차 100만원, 3차 2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3년간 적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대구 중구, 남구, 수성구, 북구 6곳의 주유소를 돌며 주유해 봤다. 중구 한 곳을 빼곤 '시동을 꺼 달라'는 주유소가 없었다. 이곳마저도 '엔진 꺼주세요'라는 직원 말 한마디가 전부였다. 주유 중 엔진을 멈추지 않았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남구 대명동의 한 주유소. 우측 방향등을 켠 차량이 속속 주유소로 들어온다. 잽싸게 주유소 직원이 차량을 맞은 뒤 주유총을 집어든다. 1시간가량 주유를 한 휘발유 차량 16대를 확인한 결과 단 2대만 주유 중 엔진을 정지했다. 담배를 피우며 주유소로 들어오는 운전자도 있었다. 이희영(31·여·달서구 본동)씨는 "습관적으로 주유소에 들어오면 시동을 끄고 있지만 폭발 위험성이 있는지 몰랐고 주유 중 엔진 정지 제도는 처음 들어봤다"고 말했다.
김인철(33·남구 이천동)씨는 "시동을 껐다 켜면 기름이 더 많이 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주유할 때도 시동을 끄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구 한 주유소 직원은 "전에 엔진 정지 요구를 했다가 손님에게 면박을 당한 적이 있고 '손님을 귀찮게 하지 말라'는 사장님 지시도 있어 요즘에는 '시동을 꺼달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주유 중 엔진 정지는 안전과 환경을 위해 꼭 지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본자동차정비 정순갑(43) 전무는 "차량 시동이 켜져 있다는 것은 차량에 전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며 "주유 중 엔진을 정지하지 않으면 정전기나 엔진 스파크가 공기 중 휘발유 유증기와 만나 화재나 폭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 녹색소비자연대 안재홍 사무국장은 "주유시간(평균 3분) 동안 차량 한 대당 약 62㎖의 휘발유가 소비된다"며 "주유 중 엔진정지 제도는 에너지 절약과 환경 보호 측면에서 하루빨리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소방본부는 다음달 집중 단속에 돌입한다. 대구소방본부 측은 "인력과 시간 부족으로 1천개가 넘는 대구 주유소를 일일이 단속하기가 쉽지 않다"며 "그러나 10월부터 각 소방서와 연계해 집중 단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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