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잃고 싶지 않은 가장 소중한 것을 대라면 서슴지 않고 보행의 자유를 대겠다고 한 어느 노작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내 수족을 내 맘대로 부리지 못하고 내 치부를 드러내며 내 분비물을 고스란히 남에게 맡기는 일이 얼마나 치욕적이며 자존심 상하는 일일지, 그건 경험해 보지 않고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는 일이다. 더군다나 머리는 멀쩡하니 맨 정신인데 몸은 내 몸이 아닌 경우는 말해 무엇하리.
요즘은 어느 병원이든 간병인 시스템이 잘 준비되어 있어 숙련된 그분들의 손을 빌릴 수 있다. 어쩌면 아마추어이면서 감정적인 가족보다 이성적인 그 분들이 환자에겐 훨씬 편한 손길 일수도 있다. 언젠가 어머님이 볼일을 보고 한참 지난 뒤 물로 씻어드려야 할 상황이 있었다. 맨손으로 씻다가 나는 내 손에 묻은 분비물에 뜨끔 놀랐고 그것을 어머님이 느끼지 못하도록 씻어내느라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손을 완전히 씻고 냄새를 맡았어야 했는데 그 냄새가 머릿속에 각인되어 손에선 계속 냄새가 나는 듯해 곤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야야, 니가 나 때문에 힘들어서 어쩌냐?" 이 말을 마지막으로 어머님은 말문을 닫으셨다.
뇌경색 발병한 지 1년도 넘은 지금, 어머님은 손가락 발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다. 그 동안에 뇌출혈 합병증까지 왔고, 물 한 방울도 삼킬 수 없어 호스로 영양공급을 받은 지가 7개월이 넘었다. 중환자실 나들이가 두번이나 있었고 갈 때마다 한 달씩 신세를 졌다. 중환자실이란 곳이 5분 뒤의 상황을 예측 못하는 곳이라 마음의 준비는 갈 때마다 했었다. 지금은 아무도 못 알아보시고 감정이 없는 표정으로 계신다. 그래도 타고 남은 불꽃에 다시 남은 기름이 있었던 것처럼 생명 연장을 하고 계신다.
세월이 좋아져서 병원비가 들긴 하지만 나는 요즘은 이틀에 한 번 병문안 가는 것으로도 효부 소리를 듣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떤 이는 퇴원해야 자연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연명 치료의 의미 없음을 얘기한다. 하지만 어머님이 어떤 마음일지는 내가 그 상황이 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어쩌다 병원에서 예고 없이 늦은 시간에 전화가 오면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그러다가 호전되면 반갑다.
어머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 긴 여정이 끝나는 날까지 내가 내게 죄 짓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는 마음으로 어머님을 배웅해 드릴 것이다.
이미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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