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고양이' '오리 날다'와 같은 히트곡을 안다고 밴드 '체리필터'(보컬 조유진, 기타 정우진, 베이스 연윤근, 드럼'랩 손상혁)를 모두 알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수많은 밴드들이 활동하는 언더그라운드 홍대 록 무대에서 오버그라운드 주류 가요계로 성공리에 진입한 체리필터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언더와 오버를 넘나드는 다양한 색깔의 음악과 보컬 조유진의 매력적인 보이스, 그리고 멤버 한 명 한 명의 탄탄한 실력이다.
특별한 록밴드 '체리필터'가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5집 신보 '록스테릭'(Rocksteric : Rock+Hysteric)으로 돌아왔다. '발작적인 록'이라는 뜻의 앨범 타이틀이다.
2006년 8월에 발매된 4집 앨범 이후 무려 3년 만에 나온 정규 앨범이다. 그간 디지털 싱글 앨범 등을 발표하긴 했지만 정규 앨범은 정말 오랜만이다.
"사운드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의 시간을 가졌죠. 직접 디지털 싱글 음반을 발매하면서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해 봤습니다. 그래서 5집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그런 시간을 거쳐 이번 앨범에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담았습니다."(정우진)
정우진의 말대로 신보에는 록 음악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함이 십분 담겼다. '이물질'과 '카마-마라'(KAMA-MARA)는 하드코어 록 사운드의 힘 있는 노래. 반면 '일요일 오후 4시'는 얼터너티브 사운드가 돋보이는 미디엄 템포의 록 음악이다.
"음악 스타일이 변한 것은 없지만 음악을 만드는 데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어요. 과거에 비해 더 깔끔하고 단정하게 사운드를 뽑았죠. 완성도 또한 높다고 생각하고요. 음악에 있어서는 가득 채우는 것보다 때론 여백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할 때가 있는데 이번엔 그런 작업을 했어요."(조유진)
타이틀곡 '피아니시모'는 그간의 히트곡에 비해선 강렬하지만 수록곡 가운데에서는 '말랑말랑'한 편이다.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와 빈틈없이 빽빽하게 채워진 연주가 매력적이다. 중간에 가미된 래핑은 하이브리드 록에 목마른 록 마니아에게 반가운 구절이다.
그간 체리필터의 히트곡이 그랬듯 가사에는 희망을 담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난 날'이라는 바다를 건너 희망의 돛을 펼치겠다는 내용이다.
정우진은 "'낭만 고양이'이 같은 예전의 히트곡들이 대중의 입맛에 맞는 콜라 맛이었다면, '피아니시모'는 독한 향수 같은 노래"라고 설명했다.
음악 자체뿐 아니라 기술적인 면에서도 진보했다는 게 멤버들의 얘기다. 체리필터는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며 녹음실을 새로 만들었다. "녹음실만 바꾸었는데도 소리가 한층 선명해졌다"는 게 멤버들의 설명이다. 또 음반의 믹싱과 마스터링 작업을 일본에서 하는 등 질 좋은 사운드를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낭만 고양이' '오리 날다' 등 노래가 연이어 히트를 치면서 '동물농장' 밴드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던 이들이다. 이번 앨범에는 '동물 얘기가 없느냐'는 기자의 농담 섞인 질문에 정우진은 "동물 얘기를 한 게 아니라 동물을 의인화해 세상의 얘기를 전한 것인데 우연치 않게 두 노래가 히트를 치면서 '동물 농장 밴드'라는 얘길 듣게 됐다"며 "사실 동물로 가사를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체리필터의 활동 개시에 록 마니아들은 기쁨을 표시하고 있다. 오랜만에 록다운 록을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러나 공중파 방송에는 이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지 않다.
"예능의 세상이 돼서 우리 같은 밴드는 좀 고민이 되긴 하죠. 그래도 불러주면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웃음) 물론 폼나게 노래 발표하고 공연만 하고 그렇게 살고 싶죠. 하지만 한국의 시장상황 상 그게 안 된다는 것은 잘 알아요."(정우진)
"록밴드라고 대중적인 활동을 하지 말란 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예능에 나가고 난 후가 문제죠. 전 예능 프로그램 출연 후에 하루 동안 고민이 많아져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등 생각이 많아지는 거죠."(조유진)
체리필터 멤버들은 이날 자신들끼리 토론을 하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앨범 활동 방법, 후배 밴드에 대한 평가, 록의 정신 등에 대해 얘기하며 때로는 자못 심각해지기도 했다. 이들의 대화에서 한국 록계 전체에 대한 애정이 가득 가득 묻어났다.
연윤근은 "우리가 더 열심히 해서 록 팬들을 늘려야 한다"고 파이팅을 다짐했고, 조유진은 "코인클래식, 큐어스라는 밴드가 실력이 좋다"며 기자에게 관심을 부탁했다.
정우진은 "밴드들이 의견이 맞지 않아 깨지는 경우가 많다"고 걱정하며 "멤버 간의 유대감이 중요하다"고도 조언했다.
정우진은 그룹명 '체리필터'를 몸에 문신으로 새겨 넣었다. 그만큼 밴드에 대한 사랑이 깊다. "나중에 밴드가 깨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농담을 섞어 물어보자 그는 "우리는 기초 공사가 잘 돼 있어서 깨질 염려가 없다"고 단언했다.
정우진의 말처럼 체리필터는 음악에 대한 공통된 열정으로 모인 단단한 밴드다. 오랫동안 함께할 체리필터의 음악을, 팬들은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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