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중국 다롄(大連)의 뤼순(旅順)감옥에 대한민국의 두 뮤지컬 배우가 나타났다. 1910년 3월 26일, 31세의 청년이 한복을 차려입고 교수대에서 의연하게 있었던 그곳을 두 배우가 찾아간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100년 전 그곳에 있었던 대한민국 한 청년의 이야기가 뮤지컬이 되어 다음달 무대에 오른다고 한다. 그는 바로 '안중근 의사'다. 공연을 앞두고 안중근 의사의 삶을 노래해야 할 두 배우가 그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 도마 안중근. 잘 알려진 듯 하지만 이미 잊혀져 버린 한 사람의 삶을 새로이 조명해보는 기회가 우리에게도 찾아왔다.
얼마 전, 업무상 찾게 된 하얼빈에서 필자는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중국 정부가 최초로 외국인의 업적을 기려 만든 기념관인 '안중근 기념관'과 조국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야 했던 젊은 청춘의 열정이 담긴 하얼빈 역, 또한 함께 도모하던 동지들의 꿈이 깃든 하얼빈공원이 그것이다. 100년이란 세월 앞에 퇴색돼 버린 우리의 기억과는 달리 하얼빈은 그 시절의 인생들을 적게나마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 등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유로 15가지 죄상을 밝혔던 그의 당당함이 서린 그곳을 바라보자니 가슴이 벅차오르면서도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나?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선뜻 답을 하기 쉽지가 않다. 2009년, 안중근 의사의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수면 위로 조금씩 올라오는 언론의 언급으로나마 우리에게 역사를 다시 한 번 환기시켜 주니 다행인 듯하다.
하지만 출장을 통해 봤던 것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고 있자니 당황한 것이 사실이다. '안중근 기념관 설립' 여부를 두고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갑론을박과 하얼빈에서부터 옮겨 온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늘어난 일거리로만 느끼는 사람들로 인해 이곳저곳의 주차장을 전전하던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아직 세워질 자리조차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 기념하기 좋아하고 의미 부여하기 좋아하는 한국인의 국민성을 적절히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차지하려는 단체들의 움직임까지 만약 안중근 의사가 이 상황을 하늘에서 보고 있다면, 그의 심정은 아마 절대자만이 치유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닐는지.
한국인의 열정은 역사를 만들어왔다.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단일 민족의 힘과 지독할 만큼의 조국애는 안중근과 같은 위인을 탄생시켰고, 국채보상운동과 IMF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나라를 구했으며, 2002년 월드컵에서는 온 국민의 염원으로 4강 신화를 이룩해냈다. 비록 그 시절을 잊고 쏟아져 나오는 신용불량자들이나 2002년 월드컵 때 주장을 맡았던 홍명보 선수가 은퇴 후 감독이 된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은 차치하고라도 우리가 보여줬던 국가적 저력은 모든 것을 뛰어넘기에 충분하다. 반만년 역사를 이룩한 한민족이 역사의 중요성을 짚고 가야 할 시점이야말로 지금이 아닐까? 사실 우리가 안중근 의사를 영웅으로서 존경하는 까닭은 우리의 원수, 일본의 수장을 사살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죽음을 앞둔 감옥과 법정에서도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을 외친 의연한 모습 때문이었으리라. '영웅'에게 있었던 그 의연함이 역사와 시대 앞에 현재의 우리에게도 투영되길 바라본다.
안타깝게도 안중근 의사의 유골은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다. 20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순국 100주년이 되기 전에 하루빨리 유골을 찾아 우리의 영웅이 그렇게도 사랑한 조국에 모시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더 나아가 다음 한 세기에는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제대로 후대에 계승하도록 '영웅 안중근'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100년 전, 청년 안중근이 가졌던 식견을 기리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역사가 경쟁력임을 알고 우리의 역사마저 자신들의 역사처럼 왜곡시키고 있는 주변국들을 향해 당당히 돌팔매질할 수 있게 될 날이 하루빨리 찾아오길 바라본다.
배성혁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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