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문명 국가가 아니잖아요?"
박수관 명창이 2004년 아프리카 세네갈의 다니엘 소라노 국립극장 공연 당시 현지 언론인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깜짝 놀란 박 명창은 "우리나라 1인당 GNP는 1만4천달러가 넘고, 세네갈은 600달러 정도인데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그의 답이 걸작이었다.
"한국은 컴퓨터와 자동차, 휴대폰을 만들어 장사하는 나라다. 돈은 좀 버는 모양이지만 문화와 예술은 없지 않은가? 세네갈에는 아름다운 노래와 춤이 있다."
5천년 역사를 가진 나라, 세계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아름다운 문화와 예술을 가진 나라인데 몰라도 한참 모르는 얘기였다. 그 세네갈 언론인을 무식한 사람이라고 치부하고 말 것인가? 영국 지리교과서는 한국을 아직도 '연간 10달러 이하의 국제 원조를 받는 나라'로 기록하고 있다. 교과서 집필자의 무관심과 무지만 탓할 것인가? 버스에서 한국인과 손이 닿은 미국인은 무슨 짐승과 살을 부딪치기라도 한 듯이 손을 털고 닦았다.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와 예술을 알았어도 그랬을까?
"우리를 제대로 몰라주는 그들도 문제지만, 제대로 알리지 않은 우리 책임도 큽니다. 한국의 문화예술은 '정중동, 절제의 미'로 세계의 어느 나라의 예술보다 독특하고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우리 문화와 예술을 알리는 데 소홀했습니다. 그 결과 '문화와 예술이 없는 나라'로 오해받는 것입니다."
박 명창은 이튿날 공연에 그 언론인을 초대했다. 그리고 우리 노래 '상주 아리랑' '정선 아리랑' '영동 아리랑' '전쟁가' '동해 뱃노래' '백발가' '상여소리' '한 오백년' 등을 불렀다. 공연히 끝난 뒤 그 언론인은 박수관 명창을 찾아와 정중히 사과했다.
박수관 명창은 "휴대폰과 자동차만으로는 일류 한국을 건설할 수 없다. 문화와 예술이 함께 굴러갈 때 한국은 일등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각오는 1998년 러시아 공연을 시작으로 2000년 미국 카네기 홀 초청공연, 그리스, 베를린, 이탈리아, 필리핀, 아프리카 등 지금까지 5대륙에 500회 이상의 국악 공연으로 이어졌다. 9년 전부터는 뉴욕에서 '미주 한국전통국악경연대회'를 열어 미국의 교포들은 물론이고 현지인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한국의 문화나 예술이라면 그렇고 그런 것인 줄 알고 팔짱을 끼고 보던 미국 정치인들도 깜짝 놀랐다. 요즘엔 국악 대회가 열릴 때마다 현지 정치인들이 '눈도장'을 찍으러 온다. 이 대회는 내년부터 '뉴욕 세계한국 국악 경연대회'로 이름을 바꿔 전 세계인들을 초청한다.
국악의 아름다움이 알려지면서 한국과 한국인을 보는 외국인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04년 뉴욕 당국은 국악 공연 당일을 '뉴욕, 한국의 날, 국악의 날'로 지정했다. 교포들의 자긍심도 높아졌다. 개인적으로는 강하지만 뿔뿔이 흩어져 있던 교포들도 하나둘 동참하기 시작했다. 뉴욕의 수산시장 조합, 청과시장 조합도 '국악 공연'의 든든한 후원자를 자청했다. 기술 강국을 넘어 이제 문화 강국, 예술 강국으로 도약을 시작한 셈이다.
해외에 한국과 대구를 알리는 문화예술은 국악 분야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대구시립무용단(예술감독 최두혁)이 2007년 8월 영국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공연예술축제인 '2007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Edinburgh Fringe Festival)'에 작품 '꼭두각시'로 참가해 최고의 찬사인 별 다섯 개의 최고 평점을 받았다. 2008년에는 무용 작품 '햄릿 에피소드'로 현지 언론으로부터 '셰익스피어의 재해석' '아시아의 신체로 본 햄릿'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대구시립무용단의 '햄릿 에피소드'는 영국에서의 호평을 바탕으로 올해 6월 독일의 대표적 국립극장인 샤우스필하우스 보쿰(Schauspielhaus Bochum)이 주최한 'K15 페스티벌'에 초청돼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올해 6월과 7월에 걸쳐 열린 'K15 페스티벌'에는 미국, 오스트리아, 영국,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벨기에 등에서 18개의 다양한 장르 공연 작품이 참가했다. 아시아에서는 대구 시립무용단이 유일하게 초청을 받았다. 특히 관객들의 끝없는 기립 박수 속에 국립극장 샤우스필하우스 보쿰 측은 즉석에서 2010년 '최두혁 햄릿 에피소드' 재초청을 선언하기도 했다.
문화와 예술은 이미 산업이고 국력이다. 특히 대구경북의 역사와 문화 예술은 세계 최고의 상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화와 서구화를 지향해온 탓에 우리는 우리 것을 '촌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세계인들은 우리나라 문화 예술에 놀라고 감탄한다. 지역의 문화 예술인과 관련자들은 말한다.
"우리 역사와 문화, 예술을 소재로 대구에 세계인의 '놀이판'을 만들고, 또 세계로 뛰어나가자. 우리 문화와 예술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고, 우리에겐 실력도 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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