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실마을=행정구역상 명칭은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조선 중기 호은(壺隱) 조전(趙佺)이 터를 잡은 이후 한양조씨들이 380년간 세거한 동족마을로, 박사를 많이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전쟁 때 일부가 소실됐으나 1960년대에 복원됐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이 이 마을 출신이며, 비보풍수로 조성된 마을 입구의 숲은 2008년 '전국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바 있다. 경북도기념물 제78호인 호은종택(壺隱宗宅), 경북도민속자료 제42호인 옥천종택(玉川宗宅), 지훈문학관 등이 마을 내에 입지해 있다.
명문고택이나 명묘(名墓) 주위의 산세엔 대부분 한, 두개의 문필봉(文筆峰)이 있다. 붓은 곧 글이 되고, 문장이 된다. 즉 학식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신분이었던 '글 잘하는 선비'의 표상이 이 문필봉이다. 따라서 터를 고를 때 제1의 요건이 문필봉, 즉 필봉(筆鋒)이었다 하겠다. 따라서 그 당시의 명당 찾기는 곧 필봉을 찾는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산세 뿐 아니다. 바위도 해당이 된다. 호남의 거유(巨儒)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를 배향한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筆巖書院)이 그것이다. 서원의 이름은 곧 붓 형태의 바위를 지칭한 것이 되고, 실제로 서원서 멀지않은 그가 태어난 마을 입구엔 붓을 닮은 바위가 있다.
필봉은 말 그대로 붓을 닮아 뾰족한 삼각형 봉우리다. 붓을 닮은 그 산의 기운이 거주자에게 미친다고 보는 게 풍수다. 주위의 산세가 그 곳에 거주하는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 그것은 굳이 풍수를 들이대지 않고서도 설명이 가능하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호손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이 좋은 예가 된다. 인걸(人傑)은 지령(地靈), 동서양이 다를 바 없다.
문필봉하면 떠오르는 곳이 주실마을이다. 문필봉의 교과서라 할만도 하다. 박사가 많이 배출됐다고 하는, 즉 결과론적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만큼 잘 생겼다는 말이다. 필봉은 삐딱해선 안된다. 수려하고 단정해야 한다. 그것도 이쪽에서 보나 저쪽에서 보나 한결같은 모습이면 더욱 좋다. 삐딱한 필봉아래선 학자가 나도 올바르지 않다. 곡학(曲學)하는 학자가 난다. 이는 곧 세상을 호도하는 사이비학자다.
풍수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안산이다. 즉 좋은 산세가 좌우에 있는 것보다 집터나 묘터의 앞쪽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실의 문필봉은 안산이 된다. 최적의 조건이다. 여기에 벼루에 먹을 갈 때 필요한 물을 담아두는 연적봉까지 나란히 붙어있으니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주실의 주택들은 대부분 이 필봉을 바라보고 서있다. 그만큼 주실에선 이 필봉을 중시한다.
문필봉뿐만 아니다. 그 옆으론 노적봉(露積峰)도 솟구쳤다. 노적봉은 노적가리를 닮은 산이다. 문필의 문(文)에다 노적의 부(富)까지 갖춘 지세다. 골짜기의 좁은 지세에서 그 많은 인재를 배출한 것이 결코 우연만은 아닌, 풍수의 위력이 실감나는 부분이다.
주실을 흔히 호리병 형국이라고 한다. 사실 골짜기의 모습이 꼭 닮았다. 가운데가 넓고 양쪽으로 좁다. 마을 입구 쪽이 주둥이가 된다. 병의 주둥이가 넓으면 속에 든 물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물이 나가는 것이 보이면 재물도 사라지고 건강도 나빠진다. 기운도 함께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꽉 막혀야 한다. 주실마을 입구에도 비보로 조성된 숲이 있다. 뿌리 내린 지 수백 년이 지난 느티나무, 소나무 등으로 빼곡하다. 수구막이 숲이다. 이 숲은 2008년 '전국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주실조씨 문중엔 삼불차(三不借) 원칙이 지켜져 온다. 세 가지 빌리지 않는 게 있다는 것이다. 인불차(人不借), 재불차(財不借), 문불차(文不借)가 그것이다. 사람을 빌리지 않고, 재물을 빌리지 않고, 글을 빌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가, 조지훈 하면 시인 이전에 먼저 '지조론(志操論)'을 떠올린다. 당당하게 산다는 것, 이게 곧 삼불차의 정신일 터이다.
희실풍수·명리연구소장 chonjjj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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