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충청도 병적(兵籍) 기록부인 '속오군적'(束伍軍籍)엔 10세, 69세 군인의 군적도 보인다. 말을 돌보는 마정(馬丁)을 맡은 열 살배기 종남이란 어린 종과 취사병인 화병(火兵)을 맡은 69세 박소선이란 인물이다. 군정(軍政) 문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인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군역(軍役)을 피하기 위한 갖가지 수법이 성행했다. 많은 양인이 군역 의무가 없는 노비를 자원하거나 승려가 됐다. 군역이 면제되는 향교에 들어가는 사람도 줄을 이어 중종 무렵 김안로는 향교를 군역을 피하려는 자의 소굴이라고 개탄했다. 후기엔 황구첨정, 백골징포로 부담이 가중되자 너나 할 것 없이 양반으로 신분 상승을 해 양반 수가 백성의 40%에 이르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엔 대학에 들어가 징집 연기를 받는 게 병역기피의 주된 통로였다. 1962년 정부가 대학정비를 단행한 직후 대학생 수가 정원의 175%로 치솟을 정도였다. 1960년 제대 군인 150만 명에 병역기피자 10만 명, 탈영자가 12만 명에 달했다는 통계도 있다.
60년대엔 장기간 병역을 피한 뒤 고령 사유로 면제받는 수법이 쓰였다. 허위로 학력을 대학이나 대학원 재학 이상으로 높이면 입영 제한 연령까지 입영이 연기되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만30세를 넘기면 병무 공무원을 매수해 병역의무를 소멸시켰다. 70년대부턴 디스크나 결핵, 간염 같은 질병을 핑계로 병역기피를 꾀했다. 가슴에 쇳가루를 바르거나 잉크 등을 마셔 X선을 촬영할 때 결핵환자인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80년대엔 시력이나 정신상태를 이유로 병역면제를 노리는 수법이 나왔다. 90년대엔 해외 이민이나 유학 등 해외 체류 중 영주권 혹은 외국 국적을 얻어 병역면제 연령인 만30세까지 버티다 국내에 영구 귀국하는 방법이 등장했다.
병원 진단서의 환자 이름을 바꾸거나 멀쩡한 몸을 수술해 현역 입영을 기피한 병역비리 사건이 또 터졌다. 병역비리는 잊힐 만하면 재발하고 한동안 잠잠한가 싶으면 다시 터져 나오는 우리 사회 고질병이다. 병역의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토가 정립되지 않는 한 병역비리는 없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해병대 같은 힘이 드는 부대를 자원하는 젊은이들이 있는 반면 온갖 불법으로 병역을 빠져나가는 젊은이들이 있는 대한민국, 정말 요지경이 따로 없는 나라다.
이대현 논설위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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